[주말 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올해 낯선 새소리를 들었다. 내지르듯 높은 소리를 반복하는데 단음이다. 괴성에 가깝다. 나가보니 에어컨 실외기에 새 한 마리가 앉았다. 창문을 열어 놓았기에 가까이서 본다. 처음 보는 새다.

참새인가 살펴보니 잿빛이고 성인 손 한 뼘 정도로 크다. 긴 직선의 부리는 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우스꽝스럽다. 내가 가까이 있는데도 제자리인양 목청껏 소리를 토해낸다. 괴이한 소리는 들을수록 마음이 끌린다. 이름을 알 수 없어서 소리와 비슷한 '빽'이라 짓고 바라본다.

인디언들의 이름 짓기처럼 나만의 이름을 지어주니 소리도 모양도 예쁘지 않지만 기다려지는 새가 되었다. 실외기에 곡식을 다복이 놓았다. 며칠이 지나도 곡식은 그대로인데 소리는 가까이서 들린다. 내가 기다리는 새일 거라고 믿는다. 그래야 듣는 마음이 더 기쁘다.

높고 둔탁한 소리도 익숙해졌다. 다른 새소리 속에 '빽'이의 소리를 귀 기울여보면 무언가 할 말이 많은가 보다. 내 소리를 들어봐, 소리치는 듯하고 나 여기 있어, 존재를 알리는 것 같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는 것처럼 가슴속을 다 드러내며 토해낸다.

사이사이 익숙한 새소리가 들린다. 맑고 깨끗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날 빽, 빽 우는 시끄러운 소리는 밀어내고 싶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매미소리도 한창이다. 짧은 생 절정의 소리다. 우연히 한살이를 다한 매미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나직한 날갯짓 소리를 내더니 일순간 떨어진다. 생의 육신을 내려놓을 때 가벼워지는 것은 사람과 똑같다. 마지막을 지켜보는 시선의 무게가 다를 뿐이다.

우는 매미는 청춘이다. 치열한 경쟁의 소리다. 그래서 더 우렁차다. 매미 소리를 나는 응원한다. 하루살이는 입이 없다. 사는 동안 먹지 못하고 종족만 번식시킨다. 매미보다 더 짧은 한살이지만 애틋한 건 매미다.

밤에도 창문을 닫지 못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불면으로 여러 날 지친밤, 매미가 운다. 한 마리가 울더니 화답하듯 떼 지어 소리 낸다. 낮에는 반갑고 상쾌했는데 밤은 소음이다. 외면하려고 할수록 소리는 더 크게 와 닿는다.

뒤척이는 동안 자동차 질주 소리까지 겹친다. 속력을 내는 오토바이며 지나는 사람들의 대화까지 또렷이 들리고 집안도 소리로 가득하다. 선풍기 소리, 냉장고, 제습기와 벽시계 소리까지 예민해진 감각을 자극한다. 가족이 움직일 때마다 정수기며 변기 물소리도 숙면을 방해한다. 낮에는 편리하게 해 주던 것들이다. 사용할 때 몰랐는데 하나의 소리에 예민해질수록 다른 소리와 함께 더 시끄럽게 느껴진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귀뚜라미는 울다 그쳤다. 백색소음은 자연의 소리로 좋은 소리다. 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하고 집중력에 도움을 준다. 기다리는 소리는 고요하고 매미소리는 높다. 밤에 우는 매미소리를 밀어낼까, 받아들일까 마음이 흔들린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중년 여자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이명(耳鳴)으로 남편과 함께 가려던 비행기에 타지 못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편의 오랜 동업자인 프랑스 남자는 자신의 승용차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하고 둘은 자연스럽게 칸에서 파리로 출발한다.

살아온 환경과 지향하는 것이 다른 둘은 고장 잦은 오래된 승용차처럼 순간순간 감정이 흔들린다. 요리에 관심 있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남자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고 뻔뻔스럽기까지 하지만 로맨틱한 감정에 이끌리며 승용차는 달린다.

여자의 취미는 사진 찍는 일이다. 무관심한 남편과 달리 섬세하고 그녀의 취미를 존중해주는 그를 몰래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잠시, 찍은 사진을 지우다가 마지막 남은 한 장에서 호흡을 멈춘다.

파리로 가는 여정은 서로의 경계가 예민하게 부딪치는 불안함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낭만을 즐기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생각의 틈을 주지 않는다. 여자의 시선이 남자에게만 머물 무렵 남자는 카메라 사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남녀의 두 마음은 한 장의 사진을 사이에 두고 교차한다.

조영의 수필가

한 번쯤은 가족의 굴레를 벗고 나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을 이탈하고 싶은 더운 날, 기분 좋은 영화 한 편은 힐링이 된다. 꿈을 꾸고 있는가, 진짜 행복한가, 남자의 물음에 내가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이입의 혼란도 짜릿하다.

시인 j 님은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은 빛이 아니라 그늘이라고 말한다. 그늘은 빛의 차단인 어둠이 아니라 休이기에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양면 속에 살고 행동한다. 짝이 되기도 하고 나누어지는 양면과 함께 가는 길이 중용(中庸)이다. 나는 속인이라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매일매일 흔들린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