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과 고백의 60년 '신앙의 성소'

딸아, 사랑하는 딸아. 부활을 축하한다. 세례를 받고 주님 곁으로 다가간 것을 마음 깊이 박수친다. 나는 주님을 따른 적 없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적 없으며, 주님을 갈망한 적이 없다. 닭이 울고 있지만 주님을 마주볼 수 없단다. 그렇지만 고단한 삶 속에서 이따금 주님의 존재가 궁금했고 주님이 있으면, 주님 곁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아, 사랑하는 나의 딸아. 이런 와중에 딸이 먼저 주님 곁으로 다가갔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부활의 신앙을 받아들이며, 죽는 그 날까지 선하게 살겠다는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란다. 새벽을 뚫고 달려온 햇살은 오늘도 맨발이다. 때로는 차디찬 새벽, 북풍한설을 뚫고 내 곁으로 다가와 있는데 나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래서 맑게 빛나는 맨발의 햇살 앞에서 눈물을 토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세례명이 에스텔이라고 했지.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지혜로 구한 여인이 아니던가.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나, 어떤 민족이든 위기는 반드시 오기 마련이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고난과 역경을 희망으로 일구는 것이 아닐까. 에스텔처럼 말이다. 하여 이따금 고독과 절망과 거짓과 위선 앞에서 통절한 고백이 필요하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나의 딸아. 마음이 행복한 삶을 살아라. 창조주의 위대한 길을 따르거라. 온유하게 살거라. 어둠의 벼랑 끝에서 기침을 하거라. 간절하면 통할 것이니 끝없이 기도하고 사랑하여라.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씀처럼, 참된 지혜와 혜안과 열정이 필요하다. 위대한 삶을 만들어라. 사랑하는 나의 딸아….

 

몇 해 전, 큰 딸 재은이가 세례를 받았다.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먼저 에스텔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에 입문한 것인데 그 때 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마다 눈물이 넘쳐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파란 하늘이 너무 맑아서, 들판의 꽃들이 너무 예뻐서 눈물을 토했다. 나는 알았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다는 것을, 숨을 쉬고 말을 하며 견딤의 미학을 만드는 매 순간 당신이 곁에 있다는 것을, 바람도 햇살도 구름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새롭고 희망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덕동의 밤고개는 조선시대 때 밤나무가 많았고 밤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혹자는 밤나무가 많았던 것이 아니라 지형이 밤톨 모양의 낮은 고개처럼 생겨서 유래한 것이라는 이야기 한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이곳을 밤고개로 부르고 있으며, 청주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진한 삶의 애증이 녹슬고 상처 깊은 철망처럼 애달픈 곳이다.

 

밤고개에는 청주를 대표하는 오래된 성당이 있다. 내덕동 주교좌성당인데 1957년 8월에 본당이 설립됐고 1961년 10월에 성당과 사제관이 축성되었으니 6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주교좌성당은 교구장 주교가 상주하는 교구(敎區)의 중심이 되는 성당이다. 청주지역 천주교 역사의 중심이요, 신앙의 중심인 것이다.

이곳은 제임스 주교가 직접 설계했고 레이먼드 신부가 감독을 했으며 시공사에서 시공을 하면서 독특하고 웅장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서양적이고 한국적이다. 은유적이고 직설적이다. 붉은 벽돌이 주는 압도적인 이미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느리고 심미적이다. 계단 하나 하나가, 벽돌 하나 하나가 속죄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높은 종탑은 방문객들과 신자들에게 종교적 신비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고 그 소리는 햇살처럼 맑고 경쾌하다. 누군가의 부름이고 고백이며 희망이다. 신앙의 성소임을 웅변하고 있다. 나는 만나고 싶다.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그분을, 이 세상 어디선가 울고 있을 그분을 만나고 싶다.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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