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클립아트 코리아

"휴가는 잘 다녀오셨어요?" 여름철이면 의례히 인사치레로 듣거나 하게 되는 질문이다. 바다와 계곡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만큼 물놀이 안전사고도 많이 나는 계절. 텔레비전에 '위험에 처한 친구 구한 20대 청년 의식불명'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안타깝고 소름 끼치는 소식에 어느 해 8월의 기억이 진저리 치듯 떠올랐다. 큰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들은 대야산 용추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예약한 숙소 00산장은 비포장 임도를 한참 올라가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속의 해가 일찍 떨어진 곳에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저녁도 해결하기 전인데 장대비가 쏟아졌다.

산속이라 자가발전기를 돌려 공급받는 전기는 강한 빗줄기에 감전 위험과 발전기 용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둠을 밝히는 데는 촛불로 대신해야 했다. 급한 일은 손전등으로 해결하고 어쩔 수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밤새 내리쏟던 천둥 번개를 동반한 거친 비는 다행히 다음날 개어 햇살이 비추었다. 밤사이 내린 비로 계곡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서둘러 산장을 내려와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계곡에는 윗 용추에서 머물던 물이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가 있었고 아래에는 깊게 파인 소(沼)가 있어 물놀이하기에는 좋은 곳이라며 아이들이 좋아하였다. 제법 높은 곳에서 작은 폭포로 미끄럼틀을 만들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끄러워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절대 벗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주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속들이 더위를 피해 물을 찾아 들어오는 피서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계곡을 채우고 있었다. 그 속에 남매를 거느린 한 가족이 등장했고 엄마인 듯한 여인이 튜브를 몸에 끼운 채 물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기까지 였다. 폭포 위에 있던 둘째 아들의 당황한 몸짓에 남편이 후다닥 뛰어가고 바위 위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다이빙하는 모습을 좇는 나는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간신히 도착해서 내려다보니 모두들 지친 기색으로 여기저기 널브러진 정황이었다. 한숨 돌리고 상황을 들어보니 튜브만 믿고 물 미끄럼틀을 타던 그 여인은 물살에 의해 튜브가 벗겨지고 떨어지면서 수심이 제법 깊은 회오리가 치는 물웅덩이에 휩쓸린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허우적거리는 엄마를 구하겠다고 큰아들 또래인 그 집 아들이 본능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 아버지 또한 수영을 못하니 우왕좌왕 손만 내밀뿐이었고 위급한 상황에 구명조끼를 입은 우리 큰아들이 구하겠다고 뛰어든 것이다.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아주머니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처럼 큰아들을 짓누르니 모두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보고 남편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어내린 것이다. 모든 것이 아찔했던 순간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질러대던 비명소리는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게걸스럽게 삼켜버렸다. 혼비백산한 그 가족들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이 먹으려고 가져온 수박 한 덩어리를 내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싸서 돌아갔다. 사고는 순간이다. 조그마한 부주의가 어쩌면 두 가족에게 평생의 멍에로 남을 뻔한 사건이었다.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의 목숨도 내어주지 않았지만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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