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올 여름 우리 지역은 잦은 비로 인해 큰 비피해가 있었다. 비로 인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다. 올 여름처럼은 아니지만 꽤 비가 내렸다. 그러던 어느 오후 쏟아지는 폭우에 우리 집 한쪽이 무너지고 말았다. 마침 그쪽은 은주네가 살던 방 한 칸에 작은 부엌 하나로 세를 준 곳이었다. 기와집에 흙벽돌로 된 우리 집. 세찬 비 때문인지 잠시 후에야 집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동네 분들이 도와주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은주네는 건너편 집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 집은 아버지와 외삼촌 둘이 시멘트 벽돌로 무너진 집을 다시 세웠다. 겁 많던 나도 지붕에 올라가 무엇인가를 도와준 기억도 남아있다.

은주네가 살던 방은 그 전에도 그 전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세를 살았다. 드디어 무너졌던 곳이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늘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는데....어쩐 일인지 세를 놓지 않고 그렇게 갖고 싶던 나만의 방이 되었다. 그 방엔 원래 아주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제법 큰 창문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도 난 새벽 늦게 잠을 자지만 어쩌면 그 창문 때문에 시작된 늦은 잠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처음 내 방이 생기고 난 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을 수 있고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었다. 창을 열면 옆집 미숙이네 작은 뒤란 장독대와 텃밭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키가 큰 아카시아 나무랑 찔레꽃 덤불이 있었다. 그래서 창을 열면 아무도 안 보이고 예쁜 풍경을 나 혼자 볼 수 있었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빗소리와 함께 음악사에서 좋아하는 노래만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분위기에 지독하게 취한 것처럼.

곧 9월이다. 벌써부터 내 방 창문 틈으로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예전 창문의 기억 때문일까.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지을 때도 창문을 아주 아주 크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드렸다.

지금 2층 작은 내 방 창문으로는 감나무가 꽉 차 보인다. 올 비에 많이 떨어졌지만 힘을 내 몸을 키우고 있다. 감이 익으면 창문을 열고 뚝뚝 몇 개의 감을 딸 수 있다. 가끔씩 감나무에 새들을 놀러오면 숨을 멈추고 새를 가까이 볼 수 있는 특권(?)도 누리면서.

곧 가을비 소리에 귀를 적실 것이다. 그럼 창문을 열고 빗소리에 취해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할 것이다. 예전에는 노래를 들었는데... 지금은 그냥 빗소리를 즐겨 듣는다. 차 한 잔 옆에 놓고 책을 읽는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늦가을 비가 멈춘 다음 날 밤 내 방 창문은 정말 인상적이다. 불 꺼진 창에 박수근 화가가 즐겨 그렸던 나무들을 그림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 방이 추워 겨울이면 창문 가득 뽁뽁이를 붙여 조금은 답답하다는 것이다.

비와 창문, 어쩌면 이 둘은 바늘과 실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설렘. 그리고 빗방울이 닿도록 자리를 내주는 창문의 배려. 조만간 내 방 창문을 정성껏 닦아야겠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엔 맑은 창문으로 주황빛으로 물들 감과 빗방울에 작게 흔들릴 손바닥만 한 감잎도 봐야겠다.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그저 내리는 빗소리를 맘껏 듣고 싶다. 그렇게 어둑어둑 해지는 풍경도 가슴 가득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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