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클립아트코리아

2년전 가을, 일본 큐슈의 깊은 산속 온천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구마모토현 뱃부와 오이타현 경계에 있는 '츠에다테'다. 뱃부는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관광지다. '휴화산'인 아소산을 끼고 있다 보니 온천은 천혜의 관광자원이다. 뱃부에서도 츠에다테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이미 1800년 전 츄아이 천왕의 아이를 임신한 신구황후가 출산을 위해 이곳을 방문해 갓난아이를 목욕시켰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명성을 날린 곳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경을 비롯한 대도시 신혼부부의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하천을 따라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마을엔 옛 영화(榮華)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츠에다테는 쇠락한 온천관광지였다.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다만 해외관광객들을 위한 '료칸' 한곳만 성업 중이다. 저출산의 그늘이 낳은 현상이다.

인구가 1억2천만명인 일본열도는 70년쯤 뒤인 2080년이면 5천만명 이하로 감소해 현재 남한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180년이 되면 1천만명 아래로 감소한다. 시계바늘을 더 돌려 2600년으로 가면 100만명 이하가 되며 2800년이 되면 0명이 된다. 우리땅 '독도'를 그렇게 탐내는 일본이지만 앞으로 밀레니엄을 못 넘기고 사라질 수도 있다. '설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재미로 넘길 일도 아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인구가 세계를 바꾼다'라는 책을 펴낸 곳은 일본권위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이다. 최정예기자들이 전 세계 구석구석 누비며 인구문제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고 전문가의 날카로운 분석이 뒷받침된 책이다.

로버트 맬서스는 1797년에 발표한 '인구론'에서 "인구는 제한하지 않으면 기하급수학적으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인류는 탄생 이래 꾸준히 증가해 왔다. 전쟁과 전염병 확산 등 외적 요인이 있을 때만 주춤했을 뿐이다. 하지만 맬서스는 틀렸다. 최근에는 경제수준은 좋아졌지만 젊은층 실업률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러시아와 유럽 등에서 저 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강소국 이스라엘의 고민도 인구다. 팔레스타인계주민이 절반에 육박하자 '안보위협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인구위협'이라며 불임유대인에게 인공수정비를 대주고 있다. 싱가포르도 출산율이 급감하자 '성박람회'까지 개최해 국민들의 성생활을 부추기고 있다. 인구의 변화는 강대국의 서열도 바꾸고 국제정치의 지형도도 변화시킨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인도 인구는 2035년에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선다. 인도의 인구 피라미드를 보면 아래 부분이 탄탄한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젊은 노동인구(15~35세)가 2025년 즈음에는 5억9000만 명까지 늘어난다. 인도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이끌 엄청난 에너지다.

반대로 인구감소 속도가 빠른 나라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국가가 쇠락해지기 때문이다. 저출산의 재앙이다. 이 때문에 경제대국 독일과 일본도 대안 마련에 부산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고 이민자를 위해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투자대비 효율성이 낮고 사회분열과 테러위협이 상존한다. 그래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을 계기로 반세계화ㆍ반이민 정책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신 부유한 자본가들은 선진국에 거금을 투자하고 대신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받는 '국적 쇼핑'에 나서고 있지만 인구증가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인구 증가 정책은 선진국도 어려운 과제다. 인구는 늘어도 문제지만 주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인구문제는 단순히 통계뿐만 아니라 양극화현상, 심각한 핵 확산 문제, 식량과 에너지 부족, 환경 파괴, 청년실업등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와 함께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10년간 100조 원을 썼는데도 조금도 해결 기미가 안 보이고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문제도 당장 해결이 시급한 현안이지만 저출산도 '골든타임'을 맞고 있는 분위기다. 대통령 주문대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면 저출산의 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본은 2년전 인구절벽을 극복하기 위해 장관급 총괄부처인 '1억 총활약담당상'을 만들었다. 향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1.03명으로 일본보다 더 심각해졌다면 인구 전담부처 신설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책임과 의무를 지어줘야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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