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클립아트코리아

제게 나이는 몇 살 아래지만 늘 형 같은 충고를 주는 벗이 있습니다.

이 친구가 평소 하는 말입니다.

"집에 아이들한테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

"글쎄, 착하게 살라하지 뭐."

"그게 틀렸어. 형은 그게 안 되는 거야."

"왜?"

"착하게 살라고 하면 가족들이 고생을 할 수 있거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낭패를 당해 가족들이 고생하는 경우가 많잖아. 아버지가 빚보증 서주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았어. 그래서 착하게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똑똑하게 살라'고 해야 해. 똑똑하게 산다고 나쁘게 살라는 뜻이 아니니까."

그러고 생각해보면 얼마 전까지 보증 잘 못 서주어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린 경우가 공무원들도 많아 기관장이 공식적으로 재직증명서를 떼어줄 때 보증의 경우라면 발급을 거부하도록 한 일이 있습니다. 저도 그리 했었지요.

이렇게 인간의 경우는 나아닌 다른 사람의 일을 돕다가 잘못되는 경우가 있고, 또 영악한 사기꾼들은 인간의 이런 성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가 연구한 결과 한 번 속게 되면 두 번은 속지 않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상호이타성의 진화'라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과학동아 2017년 2월호에 실린 기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분야의 유명한 학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owkins)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가상의 새를 들어 상호성(reciprocity)을 설명했답니다. 진드기에 시달려 부리로 온 몸을 다듬는 새들도 머리는 자기가 어찌할 수 없어 서로 다듬어주어야 하는데 돌연 자기는 도움만 받고, 도망가는 놈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나하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결국은 이런 새들만 번성하여 아비규환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를 내놓았는데요. 여기에 대해서 로버트 트리버스는 앞에서 밝힌 대로 '상호이타성'의 원리에 의하여 이것이 진화의 끝이 아님을 설명했답니다.

트리버스는 두 가지 조건을 가정했는데요. 하나는 한 번의 도움에서 도움 받는 이득이 돕는 당사자의 비용보다 커야 한다.(아이스크림 사주려고 집을 판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거죠)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자주 만나 역할을 바꾸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둘 다 협력하는 것이 배신하는 것보다 유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진화라는 것이지요.

트리버스는 내가 도와줬을 때 상대방으로선 그냥 내빼는 편이 가장 이득이지만 영원히 호사를 누리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다른 이들과의 과거 상호작용을 기억해 예전에 나를 도와준 이만 도와주고 배신한 이는 도와주지 않는 조건적인 협력전략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친족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상호성이라고 합니다. 날 도와준 이는 끝까지 도와주지만 내 도움을 돌려주지 않는 사기꾼은 더 이상 돕지 않는 맞대응전략이 안면몰수 배신만 하는 사기꾼전략보다 후대에 자손을 더 많이 남겨 개체군에 널리 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연구자인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도 트리버스의 연구에 동의하면서 '상호이타성의 진화'에서 비친족간의 상호성이 이타적 행동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는 내가 남을 도울 때는 일시적으로 손실을 감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각자 더 많은 자식들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즉 비친족간의 상호성은 이타적 행동이 아니라 둘 다 이득을 얻는 상리적 행동이라고 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세상으로 진화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은 도태되고 만다는 진화생물학자들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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