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최동일 부국장 겸 음성·괴산 주재기자

괴산군청사 / 중부매일 DB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그 어떤 독자라도 쉽사리 잊을 수 없는 명 문장이 있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이 구절은 '데미안'이라는 책 제목과 함께 인류 문학사의 한 쪽을 장식하고 있다. 주인공의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의미하는 이 문구는 소설의 내용을 한 줄로 함축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한 길고도 고단한 깨달음의 과정을 담은 이 책과 이 문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데미안의 명문에 비견할 만 한 동양의 표현으로 '줄탁동시'를 꼽을 수 있다. 이 말은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는 과정으로 '안쪽과 바깥쪽에서 함께 알을 쪼는 것'을 의미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가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탁(啄)'이라하는데 이 두가지가 함께 이뤄져야 병아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유명한 공안(公案, 화두)이기도 한 이 말은 원래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라는 뜻의 '과숙체락(瓜熟落)'과 쌍을 이룬다. '기회와 인연은 함께 하며, 때가 되면 일은 저절로 이뤄진다'는 이 말은 이런 까닭에 오래전부터 사제(師弟) 관계나 협력, 합심의 가치를 설명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올 봄 10여년만에 군(郡) 수장이 바뀐 괴산군이 도약을 위한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지난 수십여년간 변화의 바람이 피해갔던 괴산은 최근들어 몇년새 외형적으로 큰 탈바꿈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에도 지역사회 안쪽은 여전히 무풍지대로 남아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의 기류를 이끌어야 할 군의 공직(公職)에서도 좀처럼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괴산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이처럼 비틀린 흐름을 보이는 것은 군민들의 뜻이 실리지 않고, 군 전체가 함께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괴산이 바로 가기 위해서는 왜곡(歪曲)된 변화의 기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주민이 힘을 합치고, 군 공무원들이 한 뜻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동일 부국장 겸 음성·괴산 주재기자

앞서 애기한 어려운 글이 아니더라도 때를 맞춘 협력과 합심의 중요성을 나타낸 표현으로 우리 말에 '손발이 맞다'가 있다. 손과 발이 따로따로 움직여서는 무엇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오랜 이치다. 세상 일 가운데 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다. 어떤 일이든 제대로 되려면 안과 밖에서, 위와 아래에서, 앞과 뒤에서 손발이 맞아야 한다. 이제 괴산이 독선과 독단에서 비롯된 구태(舊態)를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과 밖에서 함께 쪼는 협력이 필요하다.

새롭게 군을 이끄는 수장은 인사혁신과 책임분담을 통해 껍데기의 바깥쪽을 허물고 있다. 남은 것은 안쪽의 협력이다. 그동안 보여줬던 경직된 태도와 안일하고 수동적인 업무처리는 버리지 못한다면 알은 깨지지 않는다. 괴산의 미래도 갇혀 버린다. 다행스럽게도 얼마전 열렸던 고추축제에서 그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일부의 얘기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껍데기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시적된 괴산의 줄탁동기가 알을 깨드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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