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소상팔경도는 흔히 북송대(北宋代)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소상을 모티프로 하여 그린 8폭의 그림을 뜻한다. 소상팔경은 명나라 송적(宋迪)의 시를 그림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심괄(沈括)이 찬(撰)한 <몽계필담(夢溪筆談)>의 '서화편(書畵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도지원외랑(度支員外郞)인 송적은 그림을 잘 그렸는데, 더욱 평원산수(平遠山水)를 잘하였다. 그 득의작(得意作)으로 평사락안(平沙落雁) 원포귀범(遠浦歸帆) 산시청람(山市晴嵐) 강천모설(江天暮雪) 동정추월(洞庭秋月) 소상야우(瀟湘夜雨) 연사만종(煙寺晩鐘) 어촌석조(漁村夕照)가 있는데 이를 팔경(八景)이라고 하였다."

물론 소상의 경치에 대한 표현은 단지 회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식(曹植, 192-232)이나 이백(李白, 701-762) 같은 시인들에게도 읊어졌다. 그러면 소상팔경도가 그려진 시기는 북송대가 아니라 그 이전, 즉 조식이 생존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김영재는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1170-1197)의 어명으로 이광필이 소상팔경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진술한다. 왜냐하면 이광필이 그렸다는 소상팔경도도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광필은 소상에 직접 가보았을까? 만약 그가 소상에 가보지 못했다면 무엇을 참조로 소상팔경도를 그렸을까? 혹시 그의 소상팔경도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소상팔경도나 심괄의 찬에서 읽었던 여덟 장면을 통해 그려진 것이 아닐까? 혹시 그와 유사한 이전부터 전해지는 팔경도를 참조하여 소상팔경도의 여덟 장면을 연상하여 그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 소상은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호남성 동정호의 남쪽 부근에 위치한 곳으로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따라서 소상의 실경 혹은 승경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다. 그래서 김영재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자기네 풍광을 그려놓고 소상팔경이라 이름 붙여도 누가 저작권을 주장할 명분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열광적으로 그린 소상팔경도는 어떤 표현방식으로 그려졌을까? 그것은 일반적으로 계절, 즉 봄·여름·가을·겨울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의 시간을 뜻하는 장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휘준은 "소상팔경의 순서는 사계의 변화와 무관하게 배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소상에 있어서의 가을이나 겨울의 한 장면인 '평사낙안(平沙落雁)'이 첫 번째이고, 여름이나 가을의 장면을 다루었다고 생각되는 '소상야우(瀟湘夜雨)'가 여섯번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순서는 심괄의 찬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안희준은 그 순서가 "송적의 그림에 나타났던 순서인지, 아니면 심괄이 기록할 때 순서에 상관없이 적었던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소상팔경도의 순서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상팔경의 순서가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뒤에 살펴보듯이 대체로 '산시청람(山市晴嵐)'을 맨 앞에, '강천모설(江天暮雪)'을 맨 끝에 두고 나머지 여섯 장면은 계절을 고려하여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산시청람'은 봄의 장면으로 그리고 '강천모설'을 겨울의 장면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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