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광태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벨기에 작가 모리스 메테를 링크가 쓴 '파랑새'는 행복이 바로 곁에 있다는 걸 모르고 저 너머로 찾으러 간 어리석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행복은 비단 멀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가까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그 소중함과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치 흔한 게 공기라서 평지에서 마음껏 호흡하고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시 한다. 하지만 산소가 희박한 히말라야 고봉에 올라서야 그 소중함을 자각하는 것과도 같다.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산소처럼, 가족은 늘 가까이서 서로 마주 보며 함께 생활하는 사람인지라 자주 그 고마움과 소중함을 잊기 쉽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곁에 없는 삶을 상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서로 바라보고 지켜주며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외롭고 공허할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의미까지도 사라진다.

늘 곁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우리의 아내와 남편에게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할 일이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가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꿈과 소망을 함께 키우며 사랑의 동반자로 동행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남편과 아내임을 새삼 명심하자. 아는 게 힘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힘이다.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때늦은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있을 때 잘하자.'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말이다.

'여보'라는 표현은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하는 말이다. 같을 여(如), 보배 보(寶)로 '보배같이 귀중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또한 부부 사이에 상대편을 높여 '당신'이라 부른다. 마땅할 당(當), 몸 신(身)이 합쳐져 '내 몸 같다'는 뜻이다. '사람'을 발음하면 입술이 닫히고,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 굳게 닫힌 '사람'의 관계는 오직 '사랑'으로써만 서로를 열게 한다.

누구나 자신의 손 안에 있는 행복은 작아 보인다. 그러면서 늘 밖에서 더 큰 행복, 보다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큰 행복을 쫒다 보면 지금의 행복마저 잃고 만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가족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은 결코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가족의 단란한 행복이 떠난 뒤에야 그 행복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뒤늦게 후회한다. 지금 손 안의 행복을 크게 보자. 가족 간의 이 행복이 내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임을 잊지 말자. 그러다 보면 고구마 뿌리에 달린 고구마처럼 또 다른 행복도 함께 줄줄이 찾아온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밀이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자. 만약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면 많은 재물을 모으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무슨 의미와 즐거움이 있겠는가? 비록 무뚝뚝한 남편이나 바가지와 잔소리꾼의 아내라 할지라도 서로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그늘이자 의자이며 마음의 버팀목이다. 아내와 남편이란 이름은 우리가 세상을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김광태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재차 강조한다. 자꾸 밖으로만 향해 달리는 마음을 거두자. 공연히 딴 데 가서 찾을 것 없다. 이제 그만 눈을 소중한 가족 안으로 돌릴 일이다. 행복의 근원은 가족에게 있음을 알 일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는 빌게이츠의 말을 되새기자. 더 늦기 전에 가족은 행복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찾을 일이다. 특히 이번 한가위는 우리 모두 가족이 행복의 원천(源泉)임을 자각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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