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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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출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고졸신화의 주인공이다. 11세에 부친을 여의고 청계천 판차촌과 경기도 광주 천막집에서 성장해 고교를 졸업한 뒤 약관(17세)의 나이에 은행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주경야독한 끝에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할 만큼 부지런하고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김 부총리처럼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일컬어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 됐다. '개천용론'은 쑥 들어가고 '금수저·흙수저론'이 득세하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걷어차이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 현상이 그만큼 고착화 됐기 때문이다.

어제 발간된 서울대 재정학연구 최근호에 실린 '한국의 소득기회불평등에 대한 연구' 논문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의 차이가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지 보여주었다. 30∼50대 가구의 가처분소득과 가구주 부친의 교육수준과 직업을 토대로 기회불평등을 비교 분석한 논문은 가구주 부친의 직업과 학력 모두에서 기회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또 고숙련 집단과 저숙련 집단 간 기회불평등도 나타났다. 기회불평등은 주로 부모의 직업이 저숙련일 때 집중됐다는 의미다. 특히 최저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10명 중 2001년에는 1∼2명이 기회불평등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2014년에는 4명 가까이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연구 결과에서도 입증됐다. 성공을 위해서는 그만큼 '수저'(주어진 환경)가 그만큼 주요한 요인이 된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졌다. 1990년대 초까지 공교육 중심의 평준화된 교육체계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소득불평등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세대 간 계층 상승 기회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높은 불평등과 양극화로 기회평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악화했고 자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물론 기회불평등은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다. 선진국 중에도 독일·스웨덴·노르웨이처럼 기회불평등이 존재하지 않거나 뚜렷하지 않은 나라들도 있지만 미국과 이탈리아처럼 기회불평등이 뚜렷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기회불평등은 자칫하면 국민의 분노지수를 높일 수 있다. SNS에 '능력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로 젊은이들의 감정에 불을 지른 최순실 딸 정유라는 최순실 게이트의 기폭제가 됐다.'금수저·흙수저'가 우리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고 활기를 찾으려면 흙수저도 계층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우리사회를 견인하는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사회에 중간층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양분화, 양극화 되는 현상이 심해지면 자본주의 폐해로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쌀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 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이 된 노무현, 그리고 김동연 부총리처럼 개천에서 얼마든지 용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사회불안요소가 누적된 정체된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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