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과 예술의 경계…시련 딛고 선 '공예'

사진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우리의 가슴 속에는 시련과 실패의 이랑이 있다. 이랑이 분명할수록 강건해진다. 사람은 고뇌 속에서 단련된다고 하지 않던가. 낙담과 실망으로 얼룩진 사람은 일찍 늙고 쉽게 좌절하지만 아픔과 시련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사람은 더 큰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과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내 삶을 기념하고 생명을 찬미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해 끝없이 도전하고 창조하는 행위 말이다. 문화(Culture)라는 말은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됐는데 밭을 갈아서 경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그 결실을 맛보는 유일한 생명체다.

문화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가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공예다. 공예(工藝)는 공작과 예술이 함께한다. 영어로는 크라프트(Craft)라고 부른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예술이라는 뜻이다. 쓰임(用)과 예술(美)이 함께하는데 이를 통해 인류와 도시가 발전하고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달려왔다.

사진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1999년, 청주에서 공예비엔날레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공예와 청주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생소한 용어인 비엔날레까지 한다고 하니 냉소적이었다. 그렇지만 문화는 옛 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인식을 확장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위다. 공예비엔날레는 이 모든 것을 향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공예비엔날레 10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도전과 시련, 창조와 혁신의 연속이었다. 1회부터 6회까지는 도전과 시련의 시간이었다.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천막전시를 했다, 체육관도 리모델링해서 사용했다. 첫 해에는 대통령이 개막행사에 참석했으니 출발은 화려하고 장대했다. 입구에 대규모 설치 조형물을 만들고 예쁜 복장의 도우미들이 전시장 곳곳을 안내했다.

국제공모전을 통해 세계의 공예인들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했다. 초대작가라는 제도는 국내외 최고의 공예인을 초청하는데 주효했다. 학술과 페어를 통해 공예에 대한 미학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산업화를 위해 노력했다. 스트리트 퍼니처, 생활공예 등도 이어졌다. 초대국가 제도를 통해 한 나라의 공예문화를 심층적으로 엿볼 수 있도록 했다. 공예의 본질인 쓰임과 아름다움을 매회 설정한 주제의 시선에 맞게 표현했다. 공예의 성찬이었다.

그렇지만 시련도 만만치 않았다. 비엔날레 본질과 달리 일회성, 이벤트성, 축제성으로 치닫고 있었다. 천막전시, 체육관전시는 매회 시설물을 설치했다 철거해야 하는 등 예산낭비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교수들의 전시회다, 전문성이 부족하다, 시민참여가 저조하다 등의 비난도 있었다.

사진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공예비엔날레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7회 행사인 2011년부터다. 거칠고 야성적인 연초제조창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곳을 활용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개발과 보존의 갈등에서부터 담배 찌든 냄새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전문성 부족으로 악전고투했다. 2011년의 주제는 '유용지물(有用之物)'이었다. 공예디자인 강국으로 알려진 초대국가 핀란드는 폐공간의 가치를 공예의 향연으로 펼치는데 주효했다. 2013년에는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을 주제로 공예와 공간과 삶과 예술의 운명적 만남을 소개했다. 공예가 미술·조각·미디어·건축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연초제조창에서는 올해로 10회를 맞는 공예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공예의 확장성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기획전인 미디어아트가 주목받고 있다. 그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전문가의 시선과 대중의 시선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공예와 비엔날레의 본질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당장의 흥행보다 삶에 스며들고 영혼에 빛이 나며 내일의 텃밭에 풍요가 있어야 한다.

공예는 아름다운 쓰임이자 사랑이며 과학이다. 공예는 우리들의 삶이며 지혜이자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그리고 공예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자화상이다. 견딤이 쓰임을 만든다고 했다. 축적의 시간이 깊은 풍미를 만든다. 공예비엔날레 10회의 역사가 헛되지 않으려면 그간의 진한 땀방울과 아픔을 기념하고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콘텐츠화 하며 새로운 도전을 허락해야 한다.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사진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담지 못한 사진들

사진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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