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산이 100억원대인 직장인과 3억원대 집한채를 갖고 있는 실직자 또는 퇴직자중 누가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낼까. 이런 상식적인 질문의 답은 납득하기 힘들만큼 비상식적이다. 엄청난 재산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 이젠 일터를 떠나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이 건강보험료를 훨씬 많이 내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것은 재산이 수십억대인 부자 직장인 800여명은 '소득 최하위층'으로 분류돼 의료비 일부를 돌려받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재산이 많아도 근로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진료비 본인부담상한제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야 정치권도 모순된 건보료 개편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건보료 체계가 조속히 개편되지 않으면 양극화 현상의 심화 속에서 차별받고 고통받는 국민들이 들어 날 수 밖에 없다.
엊그제 국회에 제출된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집한 채 달랑 있는 서민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10억원 이상의 재산이 있지만, 최하위 소득층(소득 1분위)으로 분류돼 본인부담상한제의 적용을 받아 진료비를 환급받은 직장가입자는 지난해에만 819명에 달했다.
돌려받은 총액은 6억6천만 원 가량으로 1인당 평균 80만6천 원 꼴이다. 30억 원 이상도 63명에 달하며 이중에는 100억 원 이상의 재산가도 있었다. 이들은 재산이 많은 직장가입자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만 건보료를 매기기 때문에 이들이 지난해 직접 부담한 월평균 건보료는 2만5천원에서 많아야 3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2004년에 도입된 본인부담상한제 덕분에 월평균 3만600원의 건보료를 내는 모 직장인은 무려 104억7천778만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소득 최하위층으로 분류돼 지난해 39만7천910원의 진료비를 돌려받았다. 자신이 1년간 낸 총 건보료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환급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반면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외에 자동차와 재산은 물론 가족의 나이와 성별, 가구원 숫자도 따져서 부과된다. 은퇴 후 소득이 없더라도 재산 3억 원짜리 집 한 채를 갖고 있으면 이 재산에만 매달 12만 원 정도를 내야한다. 직장을 그만 둔 후 지역가입자가 되면 일정한 소득이 없어도 오히려 소득이 있을 때보다 두 배 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현행제도는 단단히 잘못됐다.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오래전에 이 같은 불합리한 부과체계를 보완하고 개선했지만 우리나라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이를 악용해 '위장 취업'하는 탈법과 편법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건보료 부과체계를 합리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문제는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는 소득이 없는데 전월세가 재산으로 간주돼 매달 5만 원의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야만 했다. 현행 건보료 체계는 재산가들에게 유리한 점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복지예산 비중을 대폭 늘리고 있다. 하지만 건보료 체계만 현실에 맞게 개편해도 생활난을 겪는 서민들과 은퇴이후 노후빈곤에 시달리는 장^노년층에겐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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