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 클립아트코리아

정말 올해같이 가뭄이 길었다가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물난리를 겪었던 여름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다가와 들판은 온통 노란 이삭이 큰 바다를 이루어 황금의 물결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풍요의 가을에서 식물들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 안에 단단한 씨앗을 넣어 새들에게 먹이고, 짐승에게 먹여 멀리 멀리 보내 자손을 낳게 할 것입니다.

추석이란 가을의 저녁인데요. 아마도 이때가 계절적으로 가장 좋은 때일 것입니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지요, 하늘은 파란색으로 높고 높지요, 수확기라서 먹을거리가 풍성하지요, 또 사실 맛도 제일 좋지요, 여하간 모든 것이 안성맞춤으로 오죽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제 생일은 추석을 보름정도 앞 둔 즈음입니다.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는 2학기 등록을 마치고 수강신청을 하던 시기라 여름방학을 보낸 친구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게 되는 시점이기도 했지요. 등록금을 내고도 어느 정도 주머니에 용돈을 채운 친구들이라 모이면 저의 생일 축하파티라고 얘기 하곤 했습니다. 정확히 생일날이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생일날 근처면 생일이라며 축하술 마시자고 우기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같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간과 같은 동물의 종족 번식은 오랜 암수 한 쌍의 짝짓기와 일정기간의 회임, 그리고 산고의 고통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태어난 날 생일의 의미를 축하합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경우는 종족의 번식을 갖가지 자기들만의 방식에 의하여 이룹니다.

과학동아 2017년 4월호에 식물의 종족번식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첫 번째는 그냥 땅에 씨앗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사과, 복숭아, 감 등인데요. 크고 두꺼운 과육 한가운데 씨앗이 박혀 있다가 가을에 과일이 잘 익어 중력으로 땅에 떨어져 씨앗이 퍼뜨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과일은 사람이나 동물에 의하여 더 멀리 옮기는 경우가 많지요.

두 번째는 터져 나오는 경우입니다. 콩이나 봉숭아 등이 있다고 합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이라는 노래가사처럼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아도 씨앗이 익으면 알아서 터지는데, 세포내 압력을 유지하는 수분의 량이 달라지면서 씨주머니가 바짝 오그라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머니가 터지면서 씨앗이 총알처럼 튀어나와 여기저기 10m 이내로 퍼진다고 하네요.

세 번째는 사람이나 동물이 옮기는 경우입니다. 사과, 밤, 버찌, 호두 등입니다. 땅에 떨어졌거나 나무에 달린 열매를 사람과 동물이 더 멀리까지 옮기는 것입니다. 사과나 감처럼 커서 통째로 먹기 어려운 과일은 먹다가 이빨에 씨앗이 부서질 위험이 있어 씨앗부분은 억세고 맛이 없게 만들었고, 복숭아나 자두는 매우 단단하고 두꺼운 껍질로 싸 이빨에 절대로 부서지지 않게 했다는 것이지요. 반면 버찌나 앵두처럼 크기가 작고 과육이 달콤한 열매는 동물에게 통째 먹힘으로써 소화되지 않고 변으로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또 밤이나 도토리, 호두 등은 다람쥐나 청설모가 식량을 비축하려고 열매를 여기 저기 숨겨두는 덕분에 널리 퍼진다고 합니다.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네 번째로 물결에 흐르는 씨앗이 있습니다. 수련이나 코코넛 등이라고 합니다. 수련의 씨앗에는 공기주머니가 있어 물에 뜬다는군요. 물결 따라 수m를 흐르다 씨앗을 바닥에 떨어뜨려 뿌리를 내린다고 합니다. 코코넛은 땅에 살지만 바닷가라 열매는 바다로 떨어뜨려 해류를 타고 수~수십km를 떠다니다가 또 다른 섬에 정착해 나무로 자란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로 바람에 날리는 씨앗의 경우입니다. 단풍나무, 소나무, 민들레 등입니다. 민들레 씨앗처럼 솜털이 달려있거나 소나무, 단풍나무처럼 날개가 있어 바람을 타고 수백m씩 날아간 뒤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자손을 멀리까지 보내 가장 좋은 환경에서 싹을 틔우기 위한 생존전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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