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충북 충주시 앙성면 비내섬 주변 갈대밭이 관광객들에게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선사하고 있다.(사진=충주시 제공)/ 뉴시스

가을이 되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충주시 앙성면에 있는 아름다운 섬, '비내섬'이다. 비내섬은 온통 갈대로 꽉 차 있다. 키 큰 갈대군락지로 유명한 비내섬은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비내섬을 좋아하는 난 영화의 내용보다 비내섬이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마음에 극장을 찾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을, 충주에 오면 비내섬을 꼭 들러 보라고 권한다.

예전 처음 비내섬을 찾은 후 느낌이 참 좋아 노랫말로 표현했다. 유화진 선생님 작곡으로 동요 발표도 했다. 억새밭이 펼쳐진 눈부신 섬/ 가을햇살에 하얗게 반짝반짝/ 할머니 댁 가는 시골길처럼/ 정겨움이 가슴에 찰랑찰랑/ 남한강 물소리 따라 동글동글 자갈길도 걸어가다/ 숨바꼭질 해보는 억새밭/ 바람 불면 일렁이는 억새물결 사이로/ 엄마 머리 보이고 아빠 신발 보이고/ 우리도 또 하나의 억새 가족 되어/ 가을 풍경화속 주인공이 되지요.

정말 비내섬을 걷고 있으면 어릴 적 할머니 댁 가던 먼지 폴폴 나는 길이 떠오른다. 비내섬은 쭉 뻗지 않고 적당히 구불구불한, 아련함을 주는 그런 길이다. 길 양 쪽으로는 눈부신 하얀 갈대가 펼쳐져 있고. 처음 비내섬을 걸을 때 잊었던 어릴 적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살다보면 오래 전 풍경들은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데... 비내섬은 그런 것들을 조용하게 떠올리게 한다.

이런 비내섬에 올해는 아내랑 아버지랑 함께 갔다. 사실 나는 아버지랑 그리 살가운 편은 아니다. 아버지에게 달랑 하나 있는 자식인데도 말이다. 대화 또한 짧다. 이런 내가 아버지 마음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나와는 달리 아내랑 아버지는 참 잘 지낸다. 누가 보면 아내가 딸이고 내가 사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런 아버지랑 굳이 비내섬을 찾은 것은 사실 이유가 있다. 내 가슴에 남을 참 좋은 풍경 길에 아버지와 함께 한 순간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난 7월부터 아버지는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을지 모를 정도로. 요즘 아내는 매일매일 오전 원주기독교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갔다 한다. 제대로 음식을 드시지도 못하고, 머리도 거의 다 빠져 흰 머리카락을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연세가 더 많이 들어 보이신다.

아버지는 어릴 적 이야기들도 들려주면서 조금은 벅차 보였지만 비내섬 한 바퀴를 다 도셨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사진도 많이 찍었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싫어하시던 아버지는 "사진 찍어요."라고 말하면 어린아이처럼 차렷 자세를 한 후 어색한 브이 손가락 포즈를 취하셨다. 또 꼭 잠깐 모자를 벗었다가도 얼른 모자를 반듯하게 쓰셨다. 아내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잘도 찍는다. 그런데 난 아버지와 한 뼘 정도 떨어져 엉거주춤 서서 찍는다. 아내와 아버지가 앞서 걸을 때 뒤에서 몰래 동영상을 찍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지 뒤뚱뒤뚱 걷는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아버지가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딱 1년만 일을 다니고 혼자 전국여행을 다니고 싶단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도 며칠 새 직장을 더 나가셨던 아버지. 딱 1년만 다니고 싶었던 직장을 며칠 다니지 못한 것이 많이도 아쉬웠던 아버지. 아버지랑 내년에 비내섬을 또 찾았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요즘 많이 약해지셨지만 잘 이겨내어 아버지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어쩜 그 소망 속에 오래오래 곁에서 함께 하고 싶은 나의 소망도 담겨 있어 더 간절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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