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업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지금 나는 70세에 뉴욕으로 날라와 그림 유학을 하고 있다. 비록 단기유학이나 말도, 교통도, 식사, 빨래, 체력도 문제가 되는 자취 생활이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50대 중반이면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대에 나는 69세에 은퇴했으니 남들보다 직장생활을 비교적 오래 한 셈이다. 처음에는 원만한 적응을 위해 은퇴한 지인들을 만나 모임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들과 교유를 하다보니 곧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새로움은 없고 자신과 사회에 바람직한 가치창조를 위한 어르신이 아닌 그저 세월 따라 노쇠해지는 늙은이 문화가 만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동이족은 죽지 않는 군자의 나라' 라고 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음에도 본래의 신분을 잊은 것이다. 더구나 초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가 머지않아 일본 등 장수국가를 제치고 세계 최장수국이 된다고 하는 시대이다.

나는 곧 붓을 들어 그림에 전념하였다. 그림은 내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8개월 만에 두 번의 개인전을 치르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태로는 그렇고 그런 화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뉴욕으로 건너와 늦은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100살을 넘어 인간자연 수명의 한계인 120살 시대라고 한다. 거기에 적응하려면 먼저 내 뇌를 새롭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말이나 글이 아니라 강력한 행동으로 뇌가 스스로 모두 가동하여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어야 한다. 독수리도 40살이 넘으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부리, 발톱, 깃털을 다 뽑고 몸을 다시 새롭게 만든다고 한다. 고통스럽지만, 성공하면 다시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를리 없다. 육체적으로는 쇠락할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얼마든지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몸이 쇠약해 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 가면서 삶을 창조하고 있다. 96세로 여성 최고령 마라토너인 미국의 세리스 톰슨, 프랑스의 105세 사이클 선수. 70세에 그림을 시작하여 101세에 죽을때까지 21번의 개인전을 연 미국의 할머니 화가도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는 '어느 90세 노인의 고백'이라는 글이 있다. 그 글을 쓰신 강석규 선생님은 약 45년 전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직접 모시던 교장 선생님이셨다. 가난하게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중·고 대학교를 설립하신 신앙심 깊은 고매하고 강철 같으신 분이셨다. 그분의 한탄이 더욱 가슴속 깊이 절절하게 와 닿았기에 무조건 변화를 위해 뉴욕으로 온 것이다. 나는 결코 저런 한탄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한 것이다.

장영주 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이곳 뉴욕의 미술 학교에는 초등학교 어린아이부터 전문가, 80살 노인까지 그야말로 평생 교육을 받으며 자기를 새롭게 하기 위해 연마를 하고 있다. 또 당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미술관에 입장하려면 어른은 25불, 경로우대는 16불인데 비해 내가 가진 학생증을 보여주니 12불로 나이와 상관 없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누구나 이런 문화적 혜택을 향유하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 완비도 중요하다. 긴 추석연휴도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 갔다. 나름대로 즐거운 노년을 창출하는 미국의 노인들을 보면서 자력자강으로 참된 어르신이 되는 우리사회, 우리나라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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