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중부매일과 충북국토균형발전 및 지방분권촉진센터가 공동주관하는 '지방분권개헌' 영동군 토론회가 12일 영동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운데 각 분야 패널들이 지정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용수

1997년 12월 발행된 빛 바랜 정책 자료집 '충북도정의 핵심 성과' 첫머리를 장식한 내용은 '지방화시대에 적합한 특수시책 전개' 였다. 지역실정에 맞는 9대 특수시책의 하나로 소개된 '향토 새옷 입히기'라는 사업은 충북의 기후·풍토에 맞는 토종 동·식물을 보전하고, 유전자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충북이 농업도라는 특성을 살린 시책 이었다. 이 무렵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충북명예연구소는 분야별로 특별한 아이템을 지닌 개인·단체를 명예연구소로 지정, 육성하는 사업이었다. 음성의 고추와 영동의 포도 재배 전문가들과 씨앗 파종기 등 농업 자동화장비 업체들이 연구소 간판을 달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심지어 상가나 아파트, 건물 옥상 등 은폐된 곳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회질서 위반 행위를 노인들이 신고하도록 한 '창변경찰제(窓邊警察制)'도 특수시책에 포함됐다. 경찰 고위직을 지낸 당시 주병덕 지사의 의중이 반영된 그야말로 '특수시책'이었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민선1기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단체장들과 지자체들이 '지방화 시대, 지방자치'를 처음 시도했던 시절이다. 개정 헌법(1987년)에 상징성만 있던 '자치'가 현실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던 '맹아기(萌芽期)' 풋풋함이 느껴지는 지방의 시책들 이었다.

그랬던 지방자치가 꼭 20년이 지났다. 기대감으로 시작했던 자치는 하나, 둘 '민낯'을 드러냈다.

단체장들은 중앙부처로, 국회로, 문턱이 닳도록 오가며 무한경쟁의 '예산 구걸'을 하고 있지 않은가. 광역지자체들은 기획재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를 부단체장으로 앉혀 놔야 국비 확보에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다. 전문학자들은 이를 "전세계 어느국가에도 없는 행태"라고 꼬집는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산업단지 조성과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특성을 반영한 엑스포 등 나름 성공한 측면도 있다. 적어도 지방이 지향할 방향은 나름대로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선 6기에 이르기까지 '자화상'을 실감한 단체장들은 이제 "선거는 있으나, 지방자치는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1987년 개헌' 30년만에 정치권은 다시 '개헌'을 논의하고 있다. 국민들이 여러차례 목도했던 것처럼 중앙집권적 국가시스템은 대통령과 지지자,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종전의 국가 시스템이 '낡은 시스템'이 됐다는 점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충북과 같은 비수도권은 '지방분권형 개헌'에 '올인'하고 있다. 행정권한과 재정(조세)을 지방에 이양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지방분권개헌 추진 충북회의와 같은 조직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문제는 지방자치를 수행할 지역 정치권 인사들의 인식이다. 주민인식도 마찬가지 인 데, 아직은 '지방자치'를 '지방선거'에 가두어 놓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방화 시대'로 시작한 지난 20년의 '열매'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 개헌'을 관철하면 '자치'는 한차원 다른 '서비스'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시스템 역시 중앙·지방 모두 종전과는 다른 성장전략과 효율성,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지역 내부로 돌려보면 정치권으로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우선 많은 당선자를 내는 게 핵심적 과제 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방의원·단체장 후보부터 '지방분권 마인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주문하는 것은 위기에 놓인 국가와 지방시스템을 보완할 '해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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