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단양고 수석교사 이임순

비행기로 훌쩍 날아가는 여행은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짧은 시간 안에 내 몸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어 완전한 이방인으로 만든다. 반면 육로를 따라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서 때로는 걷는 여행은 '낯섦'에 대한 느린 적응을 통하여 서서히 진하고 깊은 느낌으로 그곳에 '동화'되게 만든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러시아 극동의 이쪽 끝인 블라디보스톡에서 저쪽 끝인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철길로 대략 1만km로 열차가 쉬지 않고 가도 7~8일이 걸리는 먼 거리이다.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철도여행은 나에게는 아직 멀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현실로 다가올 날이 분명이 있을 것이다. 또 신의주를 거쳐 북경으로 가서 몽골의 울란바타르를 거쳐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합쳐 우리의 자동차를 수출하고 유럽의 유가공 제품을 수입하는 주역이 될 날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멀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영하 30~40도의 추위를 견뎌가며 만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면서 대륙을 넘나들고, 끝이 없는 몽골 초원에 거대한 농장을 만들어 미래의 오아시스 주인이 되는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여행 경비가 넉넉하지 못하여 에어컨이 없는 6인실 침대 기차를 며칠씩 타고가야 하는 한여름 속 한증막을 경험하는 힘든 기차여행이지만, 그것이 훗날에는 한반도가 대륙으로 길을 열어 드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아이들에게는 초석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2015년 아내와 둘이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횡단 열차 여행을 하면서 이러한 꿈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아이들과의 여행을 꿈꾸었다. 그 결과 열두 명의 아이들과 네 명의 교사가 의기투합하여 길을 나섰다.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그톡까지 9,288km를 쉬지 않고 달려도 6박7일이 걸린다. 비행기로 직행해도 아홉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이다. 1891년 모스크바에서 우랄산맥까지 이미 부설된 철도를 이어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까지 연결하는 공사가 무려 25년이 걸려 1916년 완공되기까지 연 10만 명의 죄수를 비롯한 인부가 동원되어 1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고 한다. 완공된 지 1세기, 오랜 동서 냉전을 마감한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러시아 부흥의 활력소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각국 모두가 이 철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러시아는 거대한 땅덩이를 밑천으로 가만히 앉아서 극동과 유럽 간 물류를 주도하며 오랜 세월 어려운 공사 과정을 거친 댓가로 통과운임만으로도 적잖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 철도를 남한까지 연결하면, 부산과 인천 등지에서 컨테이너에 담아 뱃길로 유럽으로 가는 연 250만 톤 이상의 화물 물류비용이 대폭 절약될 뿐만 아니라, 보통 석 달 이상 걸리던 이동 기간도 15일이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남북 철도를 잇고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연결하여 대륙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반세기가 넘는 남북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며 남북한 사이의 인적 물적 교류를 터줌으로써 현재의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이다. 아울러 남북한이 유럽으로 가는 동북아 물류기지의 역할을 한다면 일본과 우리의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은 직접 시베리아와 몽골을 보면서 앞으로의 꿈을 키워야 한다. 원래 9,288km 시베리아횡단열차 전 구간을 아이들과 함께 살펴볼 예정으로 프로젝트 수업으로 '유라시아연구반'을 출발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미국의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이 심술을 부리는 바람에, 중국으로 여행을 가려던 많은 여행객이 올 여름에 모스크바로 방향을 바꿔 비행기 표 값만 160만 원이 넘어 경비 문제로 추진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울란바토르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블라디보스톡에서 다시 인천으로 오는 여행계획으로 변경 추진하게 되어, 이번 여행의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약 4,200km 거리를 4박5일 동안 승차하게 된 것이다.

4박5일 동안 우리는 에어컨 가동이 안 되는 6인실 침대 열차(플라츠카트리니) 최하의 3등실에 승차하였다. 더구나 아이들이 11호와 12호 두 칸의 열차로 나눠지고, 침대마저 모두 2층으로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는 최악의 조건이 주어졌다. 에어컨 없는 6인실의 요금은 동일 구간의 2인실 요금에 비해 약 8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즉, 열두 명의 아이들 열차 요금이 두 사람의 2인실 요금에 해당하니 열차의 조건은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열차 안은 매우 더웠다. 빈자리 하나 없이 승객이 꽉 차고 창문은 조금만 열 수 있는 열차 구조여서 실내 온도가 30도를 오르내렸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침대에 가서 잠을 자거나 가져온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또는 준비한 전투식량이나 라면을 끼니때가 되면 먹는 것이었다. 유일한 즐거움은 5-6시간에 한 번씩 기차가 정차할 때 마다 짧게는 15분, 길게는 한 시간 기차에서 내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간식을 사 들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놀거나 러시아 할머니들에게 고추장을 드리고 빵을 얻어 먹으며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이 고통(?)의 시간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을지 몰라도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사회로 진출했을 때, 돌이켜보면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 되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아울러 이런 경험의 터전을 다져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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