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숲해설가

납지리 / 뉴시스

무심천에도 가을이 내려왔습니다. 도시의 벚나무들은 잎을 붉게 물들이고 성격 급한 산벚나무는 이미 단풍잎을 땅으로 내렸습니다. 아마도 이른 봄에 할 일 많아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겠죠. 억새들의 흰머리가 바람을 따라 흔들리면 가을노을이 무심천을 붉게 만듭니다. 가을은 자연의 색이 지배하는 계절이겠지만 그중에 색을 뽑는다면 붉은색이 아닐까 합니다. 물고기도 산란시기에 혼인색을 띠기 시작하면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들이 발색됩니다. 대부분 산란을 많이 하는 봄에서 여름 사이에 절정에 다다르고 가을이 되면 점점 혼인색이 사라지는데 반대로 가을에 가을 단풍처럼 혼인색을 띠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바로 납지리입니다.

납지리는 납자루와 닮은 민물고기입니다. 무심천 전 구간에 서식하는데 그중에 상류 지역인 가덕중학교 일대에 많이 모여 삽니다. 이름에서 보이듯이 몸이 납작하여 붙여진 납자루아과에 속합니다. 아가미 뒤에 초록색 반점이 있고 몸통 옆면 가운데 암청색의 세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보통 돌에 붙은 조류들을 먹고살지만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살아갑니다. 9월부터 11월까지 산란기인데 이때 수컷들은 배 부분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지느러미 역시 분홍색으로 색이 들어갑니다. 몸도 눕혀보면 벚나무 잎과 닮았는데 색 또한 붉게 물이 들어 한 장의 단풍이 든 벚나무 잎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납자루아과는 산란시기가 되면 수컷들을 혼인색을 띠게 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어떻게 만들어 낼까요. 어항에서 기르는 납자루아과 물고기도 시기가 되면 혼인색을 띠기 시작하지만 자연 상태의 납자루아과 물고기와 비교해서 색이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색도 밝지 않고 몸에 광택도 적은 편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유는 혼인색을 만들어 내는 색소가 바로 먹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부착 조류들을 섭취하는데 식물성인 조류에는 다양한 색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조류를 먹고 색소를 축적해서 산란시기에 혼인색을 만들기 때문에 어항에서 사는 물고기가 색이 빈약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그래서 물고기 애호가들을 겨냥한 혼인색을 띨 수 있는 사료로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혼인색이 중요한 것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 시에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사람과 비교하면 겉으로 보이는 능력, 재력 등을 혼인색으로 판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선택 시에 주관적인 끌림이 큰 역할을 하기도 하겠죠.

납자루아과들은 대부분 봄에서 여름 사이에 산란을 하는데 납지리만 특별하게 가을에 산란을 합니다. 왜 그런지 속 시원한 답변을 알고 싶지만 납지리에게 물어볼 수 없습니다. 자연의 선택은 우리가 관찰로 밖에 알 수 없기에 유추해서 생각해 내야 합니다. 납자루아과 물고기는 조개에 산란을 하는데 산란관을 조개에 넣어 알을 조개 몸속에 알을 붙입니다. 납자루아과 물고기들은 서식하는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에 산란을 할 조개의 경쟁이 심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산란하는 물고기들은 선택하는 조개의 종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피하지만 동족끼리의 경쟁도 심하니 맘에 드는 조개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납지리는 아예 산란 시기를 달리해서 경쟁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은 생태계를 더욱 발전 시켜줍니다. 서로 생존에 대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여러 방법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계의 모든 구성이 서로 실타래처럼 이어져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기도 합니다. 거꾸로 경쟁의 선택과 결과가 한정되어 있다면 다양성은 줄고 도태하게 됩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 푸른 친구들의 중요한 삶의 경쟁인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수능 날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사는 삶이 한정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쟁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안쓰러워집니다.

박현수 숲해설가

저도 그 경쟁 속에서 살아왔지만 틀에 갇힌 경쟁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들 삶 곁에 있으며 다양한 문화적인 것을 만들어 낼 때 풍요로운 삶의 다양성 가치를 느끼게 해줍니다.

우린 경쟁을 어떻게 대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면 실패한 것으로 여겨 삶이 패배한 것으로 도태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실패자로 여기고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더 도태시키는 것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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