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신용한 서원대학교 석좌교수· 前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82년생 김지영 자자 조남주 소설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가사노동까지. 마치 대한민국 여성들의 숙명처럼 여겨진 적도 있고 남성들은 별다른 고려 없이 받아들여 오기도 했던 일들. 그러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순간, 커다란 망치로 맞은 듯 한동안 멍하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공감을 위한 그 어떤 미사여구도 억지스런 강요도 전혀 없는 얇은 소설 속에는 우리시대 어머니, 누나, 아내의 팍팍한 삶과 남성들의 인식, 아니 나 자신의 인식의 격차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딸 출산과 동시에 육아에 전념하면 좋겠다는 나의 권유(?)에 잘나가던 회사를 퇴사하고 육아, 가사, 그리고 남편 뒷바라지만 전념하던 아내. 둘째가 태어나고 다시 육아와 가사 등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속에 결혼 5년여가 지난 어느날, 냉기가 흐르는 거실, 인기척은 없고... ... 아내를 찾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실 소파 한켠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던 아내. 그렇다. 우리시대 김지영들은 그렇게 생활 속에 있었던 것이다.

워킹맘에게는 시간이 돈보다 귀중하다는 말에 가슴이 짠해 진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가사노동부터 남편 셔츠 다림질까지, 육아부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와 워킹맘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정책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절실한 때이다. 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단시간 근로 활성화를 지원한다는 방침 아래 남녀 근로자가 양육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휴직을 신청하는 '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근로자 개인 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 시행중이다. 물론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육아휴직의 경우에는 휴직기간과 그 이후 근무평정 등 경력관리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고, 유연근무제의 경우 업무를 대신할 동료들 눈치가 보여 활용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특히, 인원이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휴직기간 대체인력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지만, 활용이 어렵다보니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출산 휴가를 신청하는 남성이 전체의 4% 수준밖에 안 되는 것만 보아도 현실의 팍팍함을 잘 알 수 있다. 육아휴직 후 경력관리에서 불이익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과 대체인력 고용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을 최소화 시키는 노력은 어쩌면 당연하다. 노비에게도 출산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도 배우자 출산휴가를 주었던 세종대왕의 지혜와 전통을 살리고, 남녀 간 임금 차별이나 고용 차별도 자연스럽게 개선해 온 스웨덴의 '부모휴가제도'나 '아버지의 달'에 대해서도 효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2030 기혼여성 333만명 가운데 경력단절을 경험한 사람은 117만 명으로 전체의 35.2%에 달한다. 감소폭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경력단절여성과 관련하여 각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지원제도와 지원금, 고용센터에서 운영하는 '시간선택제일자리 지원 사업'등이 있지만, 단순노동이나 알바수준의 일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경력단절여성이 얻는 새 일자리는 급여도 20% 정도 낮다. 여성의 초혼연령은 2001년 26.8세에서 지난해 30.1세로, 첫째 아기를 낳는 엄마의 평균연령은 2000년 27.68세에서 지난해 31.37세로 높아졌다.

신용한 서원대학교 석좌교수· 前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

더욱 심각한 것은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이후 혼인건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일과 출산 가운데 양자택일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고 불안한 미래와 경제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여성 고용률과 합계출산율 모두 낮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다.

여성 인재들에게 유리천정을 뚫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고, 출산과 육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육아휴직 보장, 유연, 단축 근무제, 어린이집 운영 등의 가족 친화적인 직장문화 정착이 필요하고 '임신-출산-육아'에 이르는 다양한 생애주기별 정책 수립과 시행이 중요한 시점이다.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맘충' 비난도 듣고 결국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증상마저 겪는 김지영! 이제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은 사라지고, 행복한 워킹맘으로 멋지게 부활하는 82년생 김지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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