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9월 19일 오후 충주시 일대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와 함께 우박이 떨어지면서 도로에 심어져 있던 사과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는 등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가을을 맞아 전체적으로 공기가차고 상층에 대기불안정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상층에 더 찬 공기가 유입, 저기압 기압골이 충북북부지역에 끝에 걸리면서 충주시 일부지역에 우박이 내렸다. / 중부매일 DB

우박이 떨어져 흠집이 생긴 사과를 샀다. 우박사과는 크고 때깔도 좋았지만 맛이 미심쩍어 한참을 망설이다 구매경쟁 분위기에 휩쓸려 장바구니에 담고 말았다. 우박사과는 가격 대비 맛까지 기가 막혀 가성비(價性比)가 좋아 흡족했다. 우박사과의 흠집에는 제값을 못 받아 숯덩이가 된 농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품질 좋은 사과든 흠집 사과든 정성들이는 시간은 똑 같지만 가격차이는 천지간이다.

흠집은 물체가 깨지거나 찢어진 자리나 흔적이고 인격이나 행동, 권위 따위의 부족한 점이나 결함이다. 물건을 사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활 기스에 맞닥뜨리게 된다. 새로 장만한 자동차와 핸드폰에 흠집이 나면 두고두고 속이 상한다. 몸에 난 흉터로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며 사는 게 다반사다. 오십 중반이 넘은 내게도 아주 어릴 적에 난 상처로 못생긴 왼손 약지손가락 손톱 때문에 자꾸 신경 쓰인다. 도공은 도자기에 작은 흠집이라도 생기면 가차 없이 깨트려 폐기한다.

인생의 흠집인 오점(汚點)은 마음을 잘 못 써 응어리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도덕 감정을 관장하는 내면의 법인 양심에 근거하여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에 오점이 생긴다. 현자는 사람이 닦고 배워 없애야 할 여덟 가지 흠으로 주제넘음, 망령, 아첨, 알랑거림, 참소, 이간질, 사특함, 음험을 들었고, 물리쳐야 할 네 가지 근심으로 외람됨, 탐욕, 똥고집, 교만을 말했다. 여덟 가지 흠과 네 가지 근심을 끼고 사는 비뚤어진 마음으로는 인생을 오점 없이 완주해 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족(知足)할 줄 모르는 탐욕은 인생에 크고 작은 실수나 잘못을 남긴다. 장석주 작가는 "본디 모든 존재는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자유롭지 못한 것은 대개는 물(物)에 매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도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치에 통달하고 그 결과로 물로써 자기를 해치지 않게 된다고 했다. 물은 타고난 바의 자아가 아닌 모든 것을 말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 필요들, 그리고 부귀와 명예들이 다 물의 범주에 든다. 이것들은 얻으려고 애쓸 때 마음에 희로애락이라는 파문이 일고 기필코 몸을 번거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나이 들어 나는 오점은 평생의 평판에 치명적이다. 잘못은 숨겨지고 지워지는 게 아니다. 잘못을 떠안고 사는 것 말고는 묘안이 없다. 이기주 작가는 "하나의 상처와 다른 상처가 포개지거나 맞닿을 때 우리가 지닌 상처의 모서리는 조금씩 닳아서 마모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상처의 모서리가 둥글게 다듬어지면 그 위에서 위로와 희망이라는 새순이 돋아나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오점은 당당하게 기록할 수 없는 이력이지만 성장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이력서에 기록되지 않은 고통스런 좌절과 부끄러운 오점들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진짜 인생일 수 있다.

인생의 오점을 성장의 디딤돌과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김동연 장관은 "신(神)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있는 자리 흩트리기'는 인생의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용기를, 자리가 공고해졌거나 정점에 올랐을 때는 스스로 경계하는 지혜를 줄 것이다."고 말한다. 단, '있는 자리 흩트리기'의 근간은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근본이 서면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열리는 법을 알게 되는 까닭이다. 자신과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오점을 내지 않고 사는 인생은 근본으로 완성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