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괴산산막이 옛길 /뉴시스

전북 완주군 상관면에 가면 공기마을이 있다. 마을이 마치 밥공기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뒤편 옥녀봉과 한오봉 자락에 펼쳐진 편백나무숲은 이 마을의 자랑이다. 1970년대 중반 임도에 편백나무를 심은 것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지만 불과 3년전만 해도 '내륙의 섬'처럼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6년 전 영화 '최종병기 활'의 촬영지로 낙점된 것은 산비탈에 군락을 이룬 편백나무 숲의 독특한 정취와 한낮에도 어두운 원시적인 숲속의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편백나무숲길에 한해 10만 명이 넘는 걷기여행객들이 이어져 마을을 들썩이고 있다. 주민들의 얼굴에 화색(和色)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

'걷는 길'이 지역을 바꾸고 있다.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초자치단체를 변화시킨다. 국내 도보여행 붐의 출발점이 된 제주올레뿐 아니다. 충남 태안의 솔향기길은 태안 사람들에게 전화위복이 된 길이다. 7년 전 초겨울, 태안앞바다에 검은 기름띠가 덮쳤다. 유조선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바다가 생활의 터전인 어부들에겐 엄청난 재앙이었다. 포구에 있는 횟집거리도 날벼락이었다. 비탄과 좌절이 엄습했다. 하지만 전국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물밀듯이 몰려와 기름범벅이 된 해안가 바위를 걸레로 닦고 검게 물든 백사장의 기름을 제거했다. 그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오가던 해변숲길이 환상의 비경을 간직한 '솔향기길(5개 코스)'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해 휴일이면 트레킹족을 불러오고 있다. 트레킹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간 태안 만대항이라는 작은 포구의 횟집에는 아웃도어를 차려입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괴산 산막이길도 '걷는 길'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괴산군은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는 이곳에 2011년 11월 괴산호 주변에 4km 정도의 산막이 옛길을 만들었다. 도보여행코스로는 너무 짧지만 이 길은 매년 130만명 안팎이 다녀갈 만큼 대박을 터트렸다. 길 입구 주변의 농특산물 판매장도 성황이고 인근 식당도 덩달아 신났다. 괴산군은 여세를 몰아 군자산 일대에 '길'을 테마로 갈은, 화양, 선유, 쌍곡구곡과 산막이옛길을 잇는 85km의 충청도 양반길도 냈다.

트레킹을 즐기다 보니 한달에 두번 바닷길, 호숫길, 산길, 문화유적길등을 찾아 10km이상의 길을 걷는다. 처음엔 충청권을 알음알음 걷다가 이젠 범위를 전국 각지와 섬으로 넓히고 있다. 갈 때마다 가장 먼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뒤 자세히 확인하는 곳이 해당 시·군의 관광부서다. 코스와 음식점등 현지 트레킹정보를 알기위해 담당 공무원과 접촉하다보면 지자체의 관광 정책에 대한 마인드를 읽을 수 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구불구불 햇빛길'로 널리 알려진 전북 군산시는 매우 인상적이다. 시 홈페이지에 트레킹 코스도를 그래픽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담당공무원이 관련 자료도 보내주고 트레킹 카페의 수준과 성격에 맞는 맞춤형 코스를 소개해 군산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했다. 하지만 홈피 관리, 공무원의 자세, 코스조성이 엉망인 실망스런 곳도 많다. 관광부서 공무원에게 코스에 대한 질문을 하자 "모르겠다"며 담당자가 출장갔으니 다음에 전화하라는 사람도 있다. 가장 황당한 것은 '금강 마실길'을 갔을 때다. 전체 코스중 30%만 트레킹코스고 나머지는 그냥 아스팔트가 깔린 지방도다. 이런 곳을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트레킹코스라고 홍보하고 있다. 도보여행객들을 현혹시킨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지역 이미지를 스스로 추락시키는 짓이다.

충청권에도 '길'이 많아졌다. 괴산산막이 옛길을 비롯 태안솔향기길, 진천초롱길, 제천자드락길, 충주계립령로 하늘재길과 비내길, 금산 보곡산길, 공주 마곡사 명상산책길, 단양 죽령옛길, 청원 대청호둘레길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길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명숙 제주올레재단 이사장은 "길은 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공기마을 편백나무숲길처럼 묻혀있던 보물 같은 길은 찾아내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힐링이 된다면 그게 '좋은 길'이다. 그 길이 명소가 되고 지역을 살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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