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클립아트코리아

주부들의 막춤이 방영된다. 명절증후군을 날려 보내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멘트가 따라 나온다. 흥이 많은 몸도 따라서 들썩거린다.

가장 긴 연휴를 지내면서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라인댄스를 못 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할 수도 있지만 라인댄스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여럿이 줄을 맞추어 같이 해야 제맛이 난다.

청주시 체육회에서 우리 아파트에 강사를 파견하여 라인댄스를 한다는 홍보 문이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게 7개월 전이었다. 마침 쉬는 요일이라 신청을 했는데 나이 들면 걷기나 댄스가 좋다고 해서인지 20여 명이 넘게 신청을 했다.

기본 스텝도 모르면서 시작을 했는데 음악이 시끄러워 방해가 된다는 헬스장 이용객 몇 분이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금세 살림을 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몇 번을 해보니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회장이라는 책임을 맡았으니 조속히 해결해야 될 것 같아서 총무와 같이 입주자 대표회의에 출석하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잠자던 열정과 추진력이 되살아나서 난상토론을 거치고, 복지가 잘 된 살기 좋은 아파트를 추구하는 대표자 회의에 사업 계획서와 예산요구서, 규정을 만들어 제출을 했다. 거울과 에어컨, 선풍기가 설치되니 회원들은 신바람이 나서 배우고 지도 강사는 열정과 성실로 가르치니 무료로 배우는 것이 미안했다. 이런 동아리가 생기면서 서로 얼굴도 익히고 거주하는 아파트에 대한 애착심으로 도서관에서 자원봉사하겠다는 인원도 늘었다. 다만 순회 지도여서 몇 개월 만에 요일과 시간대가 바뀌니 사전에 계획한 일과 겹쳐 못 나오는 회원이 생기는 게 아쉬웠다. 헬스장을 이용하지는 못해도 별 준비 없이 하고 나면 좋은 것을 몸이 먼저 안다고 라인댄스를 우선순위에 두는 회원이 늘어난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몸에 예쁜 라인이 생기니 라인댄스인 줄 알지만,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여러 명의 남성이 줄을 맞추어 같은 동작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추던 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댄스나 운동의 필요성을 일찍 알아서 일하면서도 즐기는 낙천성을 보였으나, 동양인들은 함부로 몸을 놀리는 것을 가볍게 보고 얕봐서 광대라는 말까지 사용하였다. 더군다나 처음에 사교춤이 들어와 가정이 파탄 난 사람들은 춤을 향락과 퇴폐의 원흉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가장 쉬운 몸짓이 춤이 아닌가 싶다. 몸이 하는 언어로 소통도 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니 일석이조여서 민속춤은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조지훈의 아름다운 시 승무는 교과서로도 배웠는데 중요무형문화재 27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아주 어렸을 때로 기억이 된다. 여염집 아낙들이 고추보다 맵다는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농사일까지 거들어야 하는 가난한 시절이었다. 4대가 같이 사는 가부장적이고 그 바쁜 일상에도 진달래가 피는 봄날 화전놀이를 가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어른들이 집을 비우는 닷새 장이 서는 날을 디데이로 잡았다. 가풀막 가기 전 동산에서 아껴두었던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꽃을 놓아 부치고 준비한 밀주와 갖은 봄나물로 놀이 판을 벌였다. 지금 같으면 삼겹살을 불판에 구웠겠지만 엄감생심이던 시절이다. 못하는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에 껑충껑충 뛰는 사람, 신세한탄을 하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만은 격식이나 형식이 없는 막춤으로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고, 그 힘으로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동료의식도 생기지 않았을지.

시 어르신들이 장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놀이는 끝나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신하게 부엌으로 돌아와 저녁을 지었다. 어른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 묵인을 했고 며느리들은 시집살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그렇게 해소했으니 멋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그때는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데 어머니가 아직은 건강하신 게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그렇게 풀어내신 덕인 듯해서 세대별 공감대 같은 것을 이제야 느낀다.

말 못하는 꽃은 향기로 존재감을 알린다는데, 라인댄스는 언어로 표현 못하는 무의식의 그 무엇을 몸짓으로 표출시켜 건강도 챙겨주니 마니아가 점점 늘어난다. 시민들을 위한 이런 좋은 사업에 박수를 보내며 더 확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이영희 약력
▶1998년 한맥문학」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장 역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칡꽃 향기'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단장 역임
▶현재 청주시 1인 1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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