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인섭 편집국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돼지고기 수출 계획을 보고받다 빵 터졌다고 한다.

얼마 전 몇몇 외신들은 두손으로 가린 얼굴을 억지로 참는 푸틴의 사진을 송고했다. 한때 배꼽 꽤나 잡았던 개그 코너 '봉숭아 학당'에서나 있을 법한 러시아 국무회의 소식 이었다.

푸틴의 웃음은 돼지고기를 '금기'로 여기는 국가이자 이슬람 인구가 80%가 넘는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수출하겠다는 러시아 농림부장관의 정책보고가 발단이 됐다. 드가체프 농림부장관은 푸틴이 주재한 회의에서 러시아와 독일의 돼지고기 수출 물량을 비교하며 더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그는 "독일은 자국에서 생산하는 돼지고기 550만톤 중 절반이 넘는 300만톤을 해외로 수출했다"며 "수입국 중에는 인도네시아와 중국, 일본, 한국 등 많은 국가들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러시아도 모든 수단을 다해 아시아 국가로 돼지고기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게 요지였다.

푸틴은 수출대상국에 인도네시아가 거론되자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며 점잖게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림장관 드가체프는 "그들도 (인도네시아 무슬림) 돼지고기를 원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코미디 같은 대응에 웃음보가 터진 푸틴은 아예 얼굴을 가린채 더 크게 웃었다고 한다.

'헛다리'짚었다 싶었던 드가체프는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한국에 더 많이 수입할 것을 제안하겠다"는 것으로 사태를 수슴했다. 푸틴이 웃는 사진은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 '시베리아' 못지않은 냉혈남 이미지를 상쇄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를 들여다보면 푸틴의 웃음은 금새 이해가 간다.

인구 2억5천만명(2016년 기준) 중 무슬림 인구가 88%에 달하는 이들은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식품의약청 규정은 돼지성분이 포함된 가공식품도 포장재에 문구와 그림이 포함된 표시를 하도록 했다.

한인섭 편집국장

돼지원료가 함유된 의약품, 전통약품, 건강보조제는 검은색, 빨간색으로 표기를 해야 한다. 심지어 돼지고기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제조된 제품이라면 이 역시 경고문구에 반영 해야할 정도이다. 그래서 얼마 전 돼지 DNA가 검출된 한국 라면 4종이 수입금지 조치를 받았던 일까지 벌어졌다.

농림장관이 이런 사정에 문외한 일리 없었을 텐데, 의욕이 과했던 걸까. 마케팅 영역에서 이 정도의 '장벽'은 얼마든 뛰어 넘을 대상으로 여기는 게 기본이다. 초원에서 말과 생활하는 몽골 유목민들에게 오토바이를 팔거나, 에스키모에 냉장고를 판매하는 정도의 능력을 지녀야 비로서 '영업'이라고 했다. 사찰에 새우젖이나, 헤어드라이기를 팔아야 한다는 얘기도 '고전'이 됐다. 무기와 유류 수출에 의존했던 러시아에 이제 '새우젖·헤어드라이' 못지않은 영업마인드를 탑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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