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릿한 꿈을 찾아 떠나는 가벼운 발걸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가면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스하고 정겨운 풍경이 가득할 것 같았다. 마을을 지나고 황금빛으로 가득한 논길을 따라 숲속으로 향하니 자연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쓸쓸하면 마음이 선해진다고 했던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정직했다.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자연은 크고 포근하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높으니 고추잠자리 한유롭고 산새들이 춤을 추며 다람쥐는 도토리 물고 까불거린다. 들녘에도 산봉우리에도 마을 골목길에도 가을에 젖어 있었다.

집집마다 붉게 물든 홍시가 주렁주렁 열려 나그네를 유혹한다. 잎 진 나무마다 홍시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수줍은 여인의 잘 여문 볼살을 보는 것처럼 설레고 긴장된다. 아~.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아름다움은 이곳을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연과 아픔을 딛고 거기에 서 있을 뿐인데 우리의 마음만 사사롭다.

햇살 가득한 일요일 아침, 보은 회인을 가겠다며 신발 끈을 조여 맸다. 그곳에 가을이 머물고 있을 것이라는 설렘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오장환문학관인데 빙그레 웃음 가득 품은 해바라기가 마중 나왔다. 낮고 느린 초가지붕의 생가와 현대식 건축양식의 기념관은 크지 않지만 오장환의 문학정신을 만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오장환이요, 다릿한 꿈이요, 번뇌요, 아름다운 뉘우침이요." 그가 무엇을 고민하였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장환은 1930년대부터 해방을 거쳐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격동기에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대천재로 불리었지만 지병으로 30대의 청춘에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짧지만 강렬한 문학적 위상을 다져 놓았다. 인간을 위한 문학, 평화를 위한 시인, 생명을 위한 노래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자 했고, 어떻게 새 시대를 열 것인가 고민케 했다.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고 한 것처럼 그의 삶 속에서 꽃향기가 끼쳐온다.

회인면 소재지는 낮고 느리고 여백의 미로 가득하다. 가을엔 붉게 물든 홍시가 집집마다 실실하고 처마 밑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이 나그네 발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어느 사진작가는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된다고 할 정도로 서정적이다. 낡았지만 사람들의 애틋한 풍경과 삶의 진솔함과 생명의 울림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풍요의 마을이다. 땅이 비옥하고 햇살과 바람이 좋고 일교차가 크기 때문이 채소와 과일 농사가 잘 되는 곳이다. 대추 열매 한 알 입에 물면 달콤한 과즙이 쏟아진다. 밭농사는 언제나 정직했다. 골목길 마당마다 깨와 콩과 벼이삭이 가을볕과 조우하고 있다. 오래된 돌담과 실개천과 기름 짜는 방앗간은 나그네를 시심에 젖게 한다. 하여 이곳은 시인의 마을이다.

양조장은 최근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그 풍경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명절 때마다, 잔치 때마다, 농번기 농한기 할 것 없이 이곳의 양조장은 잘 익은 술맛으로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회인향교와 인산객사는 이곳이 조선시대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향교는 세종대왕 때부터 있었다 하니 이 지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또한 인산객사는 관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의 관사 역할을 하였고, 남향을 하고 있는 그 풍채가 높고 넓으며 시원하니 예사롭지 않다.

이곳을 걸으면 자연과 마을과 내가 하나의 풍경이 된다. 빛과 그늘의 눈금에서 빛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다. 꽃도 지고 잎도 지고 향기마저 사라져도 우리의 발자국은 영원할 것이다.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그 지점은 항상 정직하기 때문이다.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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