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의 차 이야기] 14. 차와 수필

무슨 차를 마실까. 가을엔 상큼 달콤한 청차가 제격이지.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찻상 아래를 보니 어제 마셨던 차 잎이 바구니에 가득 쌓여있다. 문득, 내가 마신 차의 양은 얼마나 될까. 천직이라 여기며 정진했던 일의 성과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지? 매일 차 향기에 젖어 사는 직업도 세월의 더께에 고루함을 느끼던 터. 우연히 차에 대한 글을 게재하게 되었다.

글이라고는 학창시절 시나 리포트, 위문편지 따위나 써보았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차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과 경험으로 인한 나의 생각을 나열한다는 그 자체가 새로운 삶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은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습관으로 마셨던 차의 색 향 미도 더 심도 있게 느껴야 했다. 차를 너무나 사랑해서 글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선인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차의 엽성(葉聖)으로 불리는 노동(盧仝)은 일곱 잔의 차를 마시면서 변화되는 몸의 느낌을 멋지게 풀어내어 유명을 떨쳤다. 그 유명한 육우(陸羽)는 차를 한마디로 철고인감(?苦咽甘)이라고 했다. 단순히 차의 맛을 표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노력 끝에 얻어지는 '고진감래' 라고 해야 될까. 인간의 삶을 차를 통해 녹여내는 육우의 철학이 멋지다. 삶의 본질에 차 향기가 송송 맺히는 글, 차 향기를 손으로 잡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 싶다.

글쓰기에 목말라 명소로 알려진 수필반을 찾았다. 비교적 중년이 지난, 인생의 참 멋이 넘치는 품격 있는 분들이 모인 곳이다. 한 분 한 분의 눈동자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다. 긴 세월에 쌓인 보따리 속의 희로애락을 속절없이 풀어내고 아름답게 다듬어낸다. 자신이 살아온 글을 소개하면서 서러움에 복받쳐 흐느끼기도 하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가끔 문화답사를 한다. 유명한 명소를 방문하여 그곳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며 자신의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고즈넉한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진면목을 탐닉하고 사유한다. 작은 꽃 한 송이에도,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에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화무십일홍을 무색하게 한다.

명작을 위해 연마하는 문우들의 우정 또한 남다르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정성 들여 가꾸고 일구어낸 글밭의 노고를 서로 잘 알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글은 글쓴이의 마음과 향기를 켜켜이 담아낸 또 하나의 분신일지도 모른다. 고목에 새싹이 돋는 것 같은 사람들의 열정과 순수한 마음이 가을 향기처럼 깊고도 달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그 성취감은 대단하다. 무던히 정진하고 인내로서 얻어낸 기쁨의 열매라고나 할까. 다독 다작의 열매들이 터져 인고의 향기를 피워내고 아름다운 성을 쌓아가는 것이 수필이었다. 정녕코,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수필 같은 삶에 있지 않을까 싶다.

정지연 원장

차가 향기로운 것은 뜨거운 불에 익히고, 사람들의 손에 비벼지고, 말려지는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었기 때문이다. 마시는 사람은 차의 맛과 향을 탓하지만 그것조차도

역경을 이겨낸 기쁨의 열매다. 그래서 숙성되고 발효되어 명차, 명작이 탄생되는 것이리라. 연륜도 감성도 부족한 나의 글밭도 가을 들녘처럼 풍성하고 농익은 그날이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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