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속리산이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 물결에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형형색색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천천히 거닐며, 아름다운 단풍에 흠뻑 젖어본다. 혼자 즐기는 것이 미안해 동서에게 전화를 건다. 늘 같은 말 "저는 괜찮아요."에 더욱 미안하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평생을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마음에서 온다고 대개의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행복의 씨앗을 가꾸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진 자의 행복을 시기하지도 않고, 비록 넉넉하지는 못해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와가며, 남의 불행을 보면 같이 아파하는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시동생에게 신께서는 어찌하여 계속 고통을 주시는지 모르겠다.

우리 시동생들은 좀 모자라다 싶을 정도로 착하다. 그중에서도 둘째 시동생은 더욱 여리고 착하기만 한데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다. 어머니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맏이인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다.

군복무시절엔 수해 복구하러 전봇대에 올라갔다가 감전 사고로, 30대 초반에는 교통사고로 수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때도 워낙 많이 다쳐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사람 노릇 하기 힘들다고 하였으나, 의술이 좋은 덕분인지 완쾌되어 직장까지 잘 다녔었다.

그런데 50대 초반에 또 교통사고를 당해 160여 일 만에 깨어났다. 뇌를 다쳐 처음엔 가족도 몰라보았으나, 2년이 지나면서 가족들 얼굴을 알아보더니 점점 좋아져서 16년이 지난 지금은 어눌하지만, 의사 표현도 조금은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동서가 아니면 먹지도 씻지도 화장실 출입도 어렵다. 부부가 살다 보면 많은 변화와 고통을 감내해야겠지만, 동서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16년째 힘들게 사는 것이다. 그래도 불평 한번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서를 볼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동서가 시동생 병간호하는 모습은 나이팅게일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16년 동안 동서는 오로지 시동생의 수족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불평보다는 열심히 간호해서 꼭 걷게 만들겠다고 포부가 대단하다. 오히려 내가 안쓰러워 동동거리면 "그런 남편이나마 오래 살아야 한다."며, 웃는 얼굴로 지극정성 보살피는 동서를 볼 때마다 살아있는 보살 같다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왜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으로 눈물을 감추고, 초연히 간호에 열과 성을 다하는 동서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옆에 있으면 자주 들여다보기라도 할 텐데,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음만 애달프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도 자주 못 한다.

답답한 내 마음을 아는 동서는 "나야 내 남편이니 팔자라 생각하고 돌보지만, 형님은 어머니 병시중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지 않느냐"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이다.

몇 년 전 시동생 병간호하느라 고생하는 동서를 하루라도 편히 쉬게 해주고 싶어 시댁 식구 칠 남매를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쌍곡계곡으로 초대했었다. 혼자는 안 올 것 같아 칠 남매 모두를 초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에게 맡기고 하루 와서 쉬었다 가도 될 텐데 한시라도 시동생 곁을 떠날 수 없다며, 끝내 오지 않아 가족 모두를 안타깝게 하였다. 동서의 정성을 보아서라도 시동생이 하루빨리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평소 재산은 없어도 형제간의 우애는 최고라며 자부심이 대단했으나, 막상 동생이 生과 死의 갈림길에서 싸우고 있을 때 형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야무지게 숱한 어려움 헤쳐 나가는 동서에게 고마운 마음만 가질 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미소 짓는 사람의 얼굴이라더니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 동서의 얼굴은 천사 같다. 그런 동서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는 시동생의 얼굴은 세상사 근심·걱정 하나도 없는 가장 편안한 얼굴이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다정하게 울고 웃으며, 고통을 극복하고 있는 동서가 존경스럽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많이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억지웃음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지 싶다.

이난영 수필가

사랑은 그 사람을 내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라고 했든가. 남편 병시중하며 세 아이를 혼자 키우고, 가족 생계 꾸리느라 온갖 고생 마다하지 않은 동서는 남편과 가족 먼저 생각하느라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다. 그런 착한 동서에게 큰 축복이 내렸으면 한다.

동서 부부를 보며, 부부란 충만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끈끈한 정으로 이어지다가 더 나이 들어서는 평생지기 친구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시동생 수준에 맞추어 같이 어눌한 말투로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동서 부부, 부부라기보다 평생지기 친구 같은 모습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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