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시종 충북도지사 / 충북도청 제공

입동(立冬)이 지났다. 연말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해가 바뀌면 지방선거의 계절이 바로 보인다. 자치단체장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그 중에서도 이시종 지사의 행보(行步)가 유독 눈에 띤다. 최근 사람들의 입질에 가장 오르내리는 인물도 이 지사다. 3선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년이면 이 지사는 72세다. 고령화 사회에서 평균나이가 많이 올라갔다지만 적지 않은 나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국내외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이 급부상하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는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그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나는 정치인은 입을 보는 대신 발을 봐야 한다는 쪽이다. 정치인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받으면 애매한 수사(修辭)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습관적이다. 다선일수록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웅변식 언변이 몸에 뱄다. 이해는 간다. 상황이 달라지면 변명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은 다르다.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지향하는 방향이 대체로 뚜렷하다. 이런 점에서 이 지사를 관찰해보면 일관적인 패턴이 나온다. 최근 들어 행정가가 아니라 정치적인 행보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사는 국회의원에 두 번 당선됐다. 정치인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는 행정가 면모가 강하다. 충주시장을 두번 역임했고 충북지사로 두 번째 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성향이 그렇다. 이 지사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이 지사가 달라졌다. 다분히 정치인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몇 가지 사례가 조용히 알려준다. 지난여름 모 시민단체 토론회에선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위원회 김진표 위원장을 기조연설자로 초청할 것을 주최 측에 요청했다. 그러면서 행사 당일 점심식사 자리에 둘만의 점심식사를 마련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갑자기 잡힌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하느라 만남은 불발됐다. 지난 10월 충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개막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다. 이 지사는 그날 인사말을 하면서 '문비어천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 대통령을 띄우는 바람에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고향 충주에선 비판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가능성은 있다. 정치인이라면 공개적인 칭찬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 이시종의 정점(頂點)은 이장섭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임명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의외라고 봤을 것이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가 그동안 정당출신 정무부지사 발탁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고 임기도 8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사 임기중에 거쳐간 정무부지사들은 모두 경력이 탄탄한 전통 관료출신이다. 신임 이 정무부지사의 이름엔 늘 노영민 주중대사의 얼굴이 겹친다. 무려 12년간 노 대사가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으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장 비서관으로 일했고 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임용된 지 4개월 만에 정무부지사로 발탁되는 '벼락출세'를 했다. 이 지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때문에 야당 측에서는 이 지사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친문 줄대기 빅딜 인사라고 한다. 하지만 난 긍정적이다. 정권의 핵심과 선이 있다면 충북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어차피 정무부지사의 가장 큰 자산은 여권 인맥이다. 그런 점에서 이 부지사는 적임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지사의 속내가 궁금하다. 일련의 행보가 3선 도전을 꿈꾸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생명줄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항간의 의혹 때문이다. 이 지사는 두번의 임기동안 충북도정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오송화장품뷰티박람회, 괴산세계유기농엑스포, 무예마스터십등 굵직굵직한 대형 이벤트행사도 많이 열었다. 그는 지난 8년간 누구보다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사가 그 동안 쌓은 업적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외려 실패 사례만 사람들은 기억한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 지사는 이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로(岐路)에 섰다. 물론 이 지사의 발을 보면 대강 숨은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정치 선배이자 정계와 행정가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홍재형 전의원의 길과 이원종 전 지사의 길을 참고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홍 전의원은 충북지사에 나섰다가 좌절해 쓸쓸히 정계에서 퇴장했다. 이 전 지사는 박근혜 전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흠결을 남기긴 했지만 충북지사 시절 높은 지지율로 3선 고지를 눈앞에 두고 아름답게 내려왔다. 나아갈 때와 떠날 때, 그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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