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클립아트 코리아

가을이면 전시회가 참 많이 있다. 그중 해마다 찾아가는 것은 바로 그림 전시회다. 가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전시회를 만나면 정말 반갑다. 가을이 오면 올해는 또 어떤 그림을 만날까 설렘으로 가득하다. 결혼 전 가을, 아주 가끔은 내 방 한 쪽에 그림을 그리면 참 좋을 정물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정물대에 천을 깔고 작은 항아라에 억새를 꽂거나 노란 국화를 꽂았다. 그 앞으로 사과나 모과를 올려놓았다. 또 어떤 날엔 푹 고개 숙인 채 촘촘한 까만 씨앗을 자랑하던 해바라기도 올려놓았다.

가을이면 그 정물대 옆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가을비라도 내리는 날엔 늦은 밤까지 정물대에 눈맞춤을 오래오래 하곤 했다.

지금도 정물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물대와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졌다. 하지만 가을이면 이런 멀어짐을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이 그림 전시회다.

올 가을도 며칠 전 우리 지역 '화울전' 이라는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다. 모두 수채화였다. 수채화를 보고 있으면 편안해 진다. 천천히 그림을 보면서 점점 그림 세상에 빠져들었다. 여러 그림들이 있었지만 꽃들이 많이 있었다. 엉겅퀴와 목련, 사과꽃과 구절초, 노란 산국과 제비꽃... 보기만 해도 꽃향기가 솔솔 나는 듯했다.

충주는 사과가 유명하다. 봄이면 하얀 사과꽃이 눈부시다. 해마다 휴대폰으로 찰칵찰칵, 사과꽃을 찍는데... 살짝 연분홍이 감도는 사과꽃은 정말 예쁘다. 꽃잎을 만져보면 나비날개 같은 느낌도 들고, 아주 부드러운 천 같기도 하다. 봄날 눈송이 같은 하얀 목련도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멋지다. 바람이라도 불면 목련은 마치 하얀 새처럼 모두 날아갈 것 같다. 구철초 그림은 오래 전 시골동네가 생각났다. 그림 속에서 추억을 만나고 가끔은 잊혀져가는 사람들을 생각나게도 한다.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는 개와 고양이 얼굴을 그린 작은 그림들이 있었다. 마침 그림을 그린 선생님이 계셔서 친절한 그림 설명까지 듣는 기쁨을 안았다.

그림 속에 개와 고양이 눈빛이 조금은 슬퍼 보인다고 할까, 아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한참 그림과 선생님을 보니 눈이 좀 닮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했다. 잠시 후 따듯한 차 한 잔을 주셨다. 쌀쌀한 날씨여서 반가웠다. 그런데 차를 가져 온 쟁반에 눈길이 갔다. 쟁반에 직접 그린 꽃그림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쟁반으로 쓰기에는 아깝다란 생각이 들었지만 화울전에 참 어울리는 쟁반이었다. 내 상상에는 그 쟁반을 전시회에 걸면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아 풋, 웃음이 났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요즘 사람들은 참 바쁘게 살아간다. 정말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 전시회 그림을 보면서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쉼표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림 하나하나를 보면서 참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도 전시회에서 준 팸플릿에 실린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니까 또 꽃향기가 담뿍 느껴졌다.

요즘 성인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을 갖는다. 취미 활동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고 한다. 악기, 요리, 스포츠, 재봉 등 다양하지만 그 중에 그림 그리기도 하나다. 열심히 일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취미 활동이 삶의 쉼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나는 어떤 것으로 나만의 시간을 찾아볼까? 이 가을 정말 행복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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