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부여 성흥산

성흥산사랑나무

[중부매일 김덕환 기자] 마른 가을이 지나고 곱게 물들었던 낙엽을 떨어뜨리는 초겨울의 바람이 싸늘하다. 첫눈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리며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서둘러 김장을 담그고, 패딩 점퍼를 사며 겨울을 준비한 사람들처럼 겨울을 준비하는 숲의 소리도 들린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앙상해진 가지 사이사이 바람이 스치는 소리, 옷깃을 여미듯 한껏 움츠린 숨죽인 나무에서 겨울을 느낀다.

벌써 한 달 후면 2018년 새해의 해가 떠오른다. 세월의 무상함을 마지막 남은 달력을 보며 절감하게 된다. 그래도 새해는 밝아오고 해돋이 명소는 벌써부터 손님맞이를 서두르고 있다. 부여의 남쪽 임천면도 예외는 아니다. 숱한 드라마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 등장했던 성흥산 사랑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자연의 조각품인 사랑나무, 성흥산 정상 탁 트인 배경과 함께 400여년을 지켰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해돋이 명소로 유명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기에 매년 해돋이 행사에는 새해 소망을 품은 인파들로 북적인다. 2018년 1월 1일 해돋이 행사도 기대가 되는 건 나 뿐만은 아닐 거다.

사랑나무 일몰 장면

성흥산은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곳에 있는 성흥산성은 백제 동성왕이 쌓은 성으로 백제가 멸망한 후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성흥산에는 여러 유적들이 많은데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 대조사다. 임천면사무소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대조사 경내를 만나게 된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대조사에는 투박하지만 거대한 미륵보살입상이 자리해 경외감을 선사한다. 대조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제329호)은 머리와 몸의 비율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정교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듬직한 그 모습에 왠지 정이 가고, 미완성의 자유로움마저 느껴진다.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은 정형화된 美를 바라보는 안목에 신선함을 준다. 그리고 불상을 이처럼 크게 만드는 거불 문화는 이 지역의 특성이다. 멀지 않은 논산 관촉사에도 그 외형이 같은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만날 수 있다. 대조사의 미륵보살입상이 더 특별한 감성을 자극하는 건 마치 부처님 광배처럼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는 350년 된 소나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멋스럽게 늘어져 미륵보살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경외감을 준다.

대조사

대조사를 충분히 둘러본 후, 절 좌측 길 오솔길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성흥산성에 이른다. 산성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커다란 사랑나무는 시원스레 트인 시골마을 풍경과 겹쳐지며 눈 속에 박힌다. 느티나무 아래 '해돋이 명소'라는 표석 앞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명소라는 이름답게 평일에도 사랑나무를 담기 위해 올라온 이들이 적지 않다. 이제 겨울을 맞은 사랑나무는 초록의 봄빛, 뜨거운 햇빛을 머금었던 여름을 지나 가을색으로 갈아입었던 잎사귀들을 털어내고 오롯이 맨몸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그 아래로 너그러운 구릉과 얕은 골 사이로 고만고만한 집과 마을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은 시골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나무를 뒤로 하고 성흥산성의 성곽을 살펴본다. 그 옛날에는 굳건한 성문이 있었을 것이고, 성벽과 성문에는 상서로운 동물이 그려진 깃발이 펄럭였을 것이다. 성흥산성 일명 가림성(사적 제4호)은 사비도성의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268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백마강 주변 평야 가운데 우뚝 서서 왕도를 지켜냈던 중요한 방어시설이었다. 산성에는 군사가 머물고 전투를 준비해야 하니 여러 시설이 있어야 한다. 크지 않은 산성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성흥산성을 풍부하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성 안에서는 군사의 이동과 전투 준비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니 산성 안 정상 부근은 비교적 평탄해야 한다. 사랑나무 뒤 둔덕에는 건물터로 보이는 주춧돌이 보인다. 그리고 둔덕 아래 우물도 있다. 저 우물이 백제때부터 내려오는 우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발굴 조사 결과 산성 안에서 우물지와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산성의 동, 남, 북문의 우구가 남아있다.

사랑나무를 지나쳐 조금 더 올라가면 조그마한 사당 옆 부러져 다 죽어말라가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느릅나무 중에서는 상당히 큰 크기로 이를 가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절로 눈길이 간다. 느릅나무는 중국 원나라 때 대사농에서 편찬한 농서 <농상집요>, 조선시대의 <구황촬요> <치생요람> 등 여러 곳에 기록이 돼 있을 정도로 그 껍질과 속껍질, 잎, 뿌리 등이 여러 가지로 사용됐다. 우리 조상들은 느릅나무 잎을 나물로, 열매는 장아찌, 어린잎은 녹즙으로 먹었다. 특히 나무뿌리와 껍질은 말리거나 찧고 달여 가루나 환을 만드는 등 소독, 염증, 출혈, 이뇨제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좋은 목재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는 예종 원년(1468)과 성종 8년(1477), 숙종 27년(1701)에 "북방 오랑캐를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느릅나무를 심었다"고 했으며, 성종 19년(1488)에는 "최부가 수차(水車)를 만들어 바쳤는데 뼈대를 느릅나무로 만들었다"고 했다. 때문에 산성 근처에는 느릅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전쟁이 나면 병사들과 백성들이 다칠 때를 대비해 약재와 식용, 목재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설들을 뒷받침한다. 언제부터 성흥산성을 지켰을지 모르지만 쓸쓸히 수명을 다 하고 있는 느릅나무는 이제 부여에서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백제의 역사와 함께 했을지도 모르는 느릅나무도 우리가 함께 보호해 줘야 하는 부여의 일부가 아닐까.

제17회성흥산해맞이행사장면

산성 둘레를 한바퀴 돌아본다. 평평하면서도 거리도 적당하고 전망도 좋아 성벽은 산책하기에 알맞다.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향한다. 산성은 산성인지라 북쪽과 서쪽의 성벽 길은 꽤나 가파르다. 만만치 않은 코스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24대 동성왕 23년(501)조에 보면 "8월에 가림성(임천의 옛 이름)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백제시대에 쌓은 성곽 중에서 유일하게 쌓은 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 바로 이곳이다.

신비로운 모습으로 감성을 자극했던 사랑나무의 모습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성흥산에는 자유분방한 조각으로 투박하지만 정감가는 석조미륵보살입상과 백제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성흥산성,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느릅나무 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가 묻혀있다. 겨울이 더 오기 전 쉬엄쉬엄 들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2018년 새해 희망을 안고 해돋이 행사에 오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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