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린고비''는 구두쇠의 대명사다. 전국적으로 여러명의 자린고비가 있었는데 이중 음성 금왕의 조모라는 사람이 그 원조다.
 하루는 전라도의 자린고비가 음성의 자린고비를 찾아와 누가 더 ''짠돌이''인가 내기를 걸었다. 둘이는 다정하게 탄금대까지 걸어갔다. 전라도 자린고비는 왼발, 오른발 번갈아 짚신을 신고 짚신 한쪽은 들고 갔다. 그런데 음성 자린고비는 짚신 두쪽을 모두 들고 맨발로 가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짚신위에 서서 행인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음성 자린고비의 집에서 묵게된 전라도 자린고비는 밤에 잠을 청하는데 창호지를 바른지가 하도 오래되어 숭숭난 구멍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하는 수 없이 저녁때 밥알 몇개를 챙겨두었다가 가지고 온 종이를 꺼내 문을 바르고 잠을 잤다. 이튿날 길을 떠나는데 전라도 자린고비는 문종이는 자기 것이라며 모두 떼어갔다. 그러자 음성의 자린고비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문종이는 가져가도 좋으나 문종이에 묻은 밥풀은 내것이니 이것을 내놓고 가라는 요구였다. 음성 자린고비는 목침에다 문종이를 놓고 칼로 밥풀을 박박 긁어 되가져 갔다는 일화다.
 자린고비의 에피소드는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다. 쉬파리가 장독에 앉았다 날아가자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까워 ''저 장 도둑놈 잡아라 하며'' 단양 장벽루까지 따라갔다고 한다. 복더위에 부채를 하나 사오면 그 부채가 달을까봐 부채를 기둥에 붙들어 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는 것이다.(음성군 내고장전통가꾸기)
 하도 고기를 사먹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어쩌나 보려고 생선 한 마리를 그 집안 마당에 던졌더니 조공이 이를 보고 ''밥 도둑놈 들어왔다''하며 문밖으로 도로 내던졌다 한다.
 제삿날, 굴비를 한 마리 사왔다. 제사를 지낸후 천정에 매달아놓고 이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는데 아이가 밥 한 술에 굴비를 두번 쳐다보자 ''얘야, 너무 짜다 물 켤라''하고 훈계를 했다는 것.
 그렇게 인색했던 조공은 회갑이 닥치자 동네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물론 삼남의 기근을 구제하여 임금이 친히 가자(加資)를 내리고 칭찬하였다는 고사인데 이 일이 있은 후 부터 동네 사람들은 자린고비를 자인고비(慈仁考碑)로 높여 불렀다 한다.
 구두쇠가 일 개인의 구두쇠로 끝나면 별 의미가 없다. 근검 절약하면서 일군 부(富)를 내놓을 줄도 아는 베품의 미학을 동반할때 그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원군 강외면 정중리에 사는 하사용씨는 봉투를 뒤집어서 두번 사용하고 폐종이컵을 육묘상자로 활용하며 헌 달력으로 봉투를 만들어 사용하는 ''현대판 자린고비''다.
 비닐하우스 보급에 앞장서 강사로 전국을 돌며 부농의 꿈을 심는 하씨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농민이 잘 사는 복지 농촌의 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돈만 생기면 은행으로 갔다는 하씨의 생활철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살기위해 절약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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