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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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가족을 위해 그리고 가난한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던 박 모 할아버지는 목요일이면 첫 차에 올라 서울 강남으로 향한다. 500원 짜리 동전과 삶은 계란을 얻기 위해서다. 70대 노인이 되었지만 변변히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지 못했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하느라 그야말로 노후대책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다. 자식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있지만 근근이 생활하는 것 같아서 그들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자신이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자신을 탓한다.

강남 일대의 교회 여러 곳에서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무료 배식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인들은 떡과 삶은 계란 등을 받고 또 500원 짜리 동전 한 닢을 받아가기 위해서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서 배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동전 한 닢을 나누어 주는 일은 아주 오래 전에 외환위기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거리로 나앉은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의 일환이었다. 그때는 100원 짜리 동전 한 닢이었다가 2005년경에는 100원 짜리 세 닢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은 500원 짜리 동전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곳은 1000원 짜리 지폐를 주는 곳도 있지만 금방 동이 난단다. 새치기 한다며 노인들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한단다. 빨리 받고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서도 받기 위해서다. 빨리 움직이면 여러 곳에서 받을 수도 있단다. 그나마 몸이 불편한 이는 한두 곳을 찾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이제 해는 짧고 밤이 긴 동짓달이다. 가난한 이의 허리춤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이 더욱 서글픈 계절이다. 동전 한 닢과 떡 한 덩어리를 받으려 줄서는 이들이 10년 전에는 노숙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60~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라는 관계자의 말에 더욱 서글픈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는 복지 분야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있다. 잘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절대 약자인 돌봄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어린 아이와 노인은 국가가 책임을 지는 복지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을 절망하게 하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대한민국이 안고 있다. 또한 노인자살률도 최고이며 그 원인도 경제적 어려움과 질환 그리고 장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노인들이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젊은 시절을 보낸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1위이고 무역 규모 순위는 7위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다. 정부의 복지예산만도 100조원을 넘어서지 않았는가. 그래도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국가가 어려운 이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또한 크게 증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국가가 어려운 이들을 찾아내어 모두를 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질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을 도우려는 기부행위가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7년의 사랑의 온도가 끓어 넘칠지 의문이다.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불신풍조가 널리 퍼졌었는데, 가라앉기도 전에 기부단체의 횡령사건이 터졌고 선의의 기부자를 분노하게 한 이영학 사건은 기부에 대한 불신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으니 참 큰일이다. 우리의 기부는 정기적이기 보다는 1회성 기부가 많은 편인데 사회적 불신 팽배는 기부하는 손길조차 오그려들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기부해야 한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의 아침에, 동전 한 닢을 받기위해 줄서는 노인과 추위로 손을 비비며 눈물짓고 있을 어린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지갑을 열어야 한다. 정부는 선의의 기부가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기부단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기부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진정 올바른 선행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바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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