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추수를 끝낸 빈 들판에는 정성껏 비닐에 묶인 짚단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둥글둥글한 짚단 뭉치의 모습을 멀리서 보노라면 마치 큼지막한 타조 알을 연상케 한다. 이른 봄에 깨어나 풍우와 무더운 더위에 시달리다가도 가을에는 그 나름의 결실로 제 몫을 다 하는 농토의 모습은 영락없이 한 어머니의 굴곡진 삶을 지켜보는 것 같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미가 삶의 고달픔이나 환희 어느 쪽에만 연연하지 않듯, 농토도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항상 순응하며 의연하다.

다행히 올가을엔 날씨가 맑고 햇볕도 좋았다. 덩달아 배추와 무도 대 풍작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란 일희가 있으면 일비가 뒤따른다. 안타깝게도 배추와 무값이 폭락해 버렸다. 게다가 출하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밭둑에서 멀뚱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김장 무와 배추가 적지 않다. 운반비가 배추, 무값보다 비싸니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아까운 무와 배추가 그 자리에서 갈아엎어질지 모른다.

토요일 오후였다. 퇴근길에서 보니 차 한 대가 저 쪽 밭둑에 서 있었다. 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너 명의 아낙네들이 무를 뽑아 싣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무를 잔뜩 싣고 난 트럭이 밭고랑을 빠져 나가자 아주머니들이 무 잎줄기를 줍기 시작한다. '같이 줍자'는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도 동참을 하게 됐다. 그렇잖아도 올해는 무청을 구해 말려볼 작정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신 시래기 된장국의 구수한 맛이 지금도 입맛을 잃을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밭고랑에 들어서니 못난이 무와 싱싱한 무청이 지천이었다. 무 하나를 벗겨 한 입 베어 물어 봤다. 달콤하면서도 싸한 매운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 한 대목이 생각났다.

"대강이를 한 잎 베어 물어 낸 다음,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적 깨문다. 소녀도 따라 했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 "아, 맵고 지려"하며 집어던지고 만다." 풋사랑을 느끼며 맛봤던 이들 소년, 소녀의 무는 그들의 나이만큼이나 속이 덜 찼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맛본 무는 맛도 좋았을 뿐더러 입 안 가득히 시골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면서 피로회복제 한 박스를 밭주인에게 건넸다. 도저히 맨 손으로 돌아오기가 미안해서였다.

밭에서 주워온 무청은 차고 뒤 그늘진 곳에 줄을 잇고 빨래 널 듯이 걸었다. 시골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어릴 적 시골 고향집을 생각나게 했다. 충청도 오지에서 자란 나는 30리가 넘는 중학교를 통학했다. 추운 겨울 아침, 잠이 깰 무렵이면 '타닥타닥' 아궁이에서 장작가지 타는 소리가 이불속까지 들려왔다. 아침이 더디 오기를 바랐던 것은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고 싶어서였겠지만 장작 타는 소리가 음악처럼 정겹게 들린 탓이기도 했다. "자, 일어나 밥 먹어라. 학교 늦겠다."

김민정 수필가

어머니가 들여놓으신 질화로 속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뜨끈한 시래기 된장국으로 뚝딱 밥 한 그릇을 먹고 집을 나서면 아무리 추운 겨울 먼 통학 길도 거뜬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과 시래기는 입맛을 잃을 때마다 최고의 반찬이 되었다. 요즈음은 샐러드 바 때문에 시래기 된장국은 푸대접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특히 젊은이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름도 낯선 샐러드가 차려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라틴 아메리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젊은이들이에게 시래깃국은 전설 같은 옛 음식으로 치부되어 있다. 지금, 그러나 이 순간 나를 유혹하는 요리가 있다면 입안에서 느끼는 구수한 시래기된장국이 아닌가 한다. 음식을 보면 누군가를 그립게 하고, 잔잔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바로 나에게는 시래기 된장국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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