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얼마 전 청소년 시집을 냈다. 처음 펴내는 청소년 시집이라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놓고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시집이 나온 후 그동안 걱정이 살짝 설렘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주변에서 책 제목인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라는 게 그냥 편하게 다가온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몇 번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주변에 고마운 사람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지난 달 말 달력을 두 개나 받았다. 1월 인 듯싶더니 훌쩍 지나 한 해의 끝자락에 와있다. 새 달력을 받으면 지난 해 달력에서 메모했던 부분을 찾아 다시 새 달력에 표시하곤 한다. 부모님 생신, 가족과 친구 생일, 또 무슨 무슨 기념일 등, 특히 음력은 잘 따져가며 메모를 하곤 한다. 그런데 뭐가 그리 바쁜 것인지 몇 해 전부터는 새 달력에 일단 간신히 2월~ 3월정도 까지 메모 한다. 그리고선 나머지는 시간 되면 마저 해야지 하지만 그것도 생각뿐. 그러다 미처 옮겨 적지 못해 꼭 챙겨야할 날을 그날 아침에 알아 아차,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한 해가 지나가면 내 달력은 작은 글씨들이 개미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작은 글씨에는 고마운 분들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하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자꾸 자꾸 잊어버리고 만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달력의 메모를 보니 옆에 있어 줘서 고마운 분들이 참 많다. 무엇인가 주고도 더 주고 싶은 사람, 미처 또는 힘들어 더 못 줘서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내 부족함을 뒤로 하고 칭찬을 해 주는 사람. 궂은일을 내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 늘 긍정적이고 따스한 사람…….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주택가 골목집이다. 신문이나 달이 지난 잡지 같은 것 등을 골목에 내 놓을 때가 있다. 그러면 동네 할머니 몇 분은 낡은 유모차에 담아 가신다. 더운 날엔 아내는 할머니께 찬물도 드리고 골목이 경사이니 아예 유모차에 실어준다. 어떨 때는 안 입는 옷이 더 후한 값을 받는다는 할머니 말씀에 옷도 정리해 몇 자루 드린 적도 있다. 비가 오면 젖을 까봐 우산이나 비닐로 덮어 놓는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할머니는 물건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뒷정리까지 하고 가신다. 그중 연세가 제일 많은 깡마른 할머니 한 분이 대문 손잡이에 까만 비닐봉지를 걸어 놓으셨다. 그 안에는 초코파이 한 개와 요구르트가 있었다. 또 둘째 아이한테는 인사도 잘 한다며 글쎄 천 원을 주셨다. 길에서 만나 인사를 하면 늘 챙겨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러자 우리 가족은 아예 할머니 집 앞에다 재활용품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많이 그렇게 했다. 할머니 댁을 지나다 소나기라도 오면 옆에 있는 비닐로 재활용품을 얼른 덮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 이후에도 손수 기른 호박이나 고추 등을 대문에 걸어 놓기도 했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 많은 것, 그럼 살아감이 행복하다는 것이 아닐까. 아주 크거나 화려한 것이 아닌 그저 옆에 있어 줘서 고마운 사람들. 조금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또는 슬쩍 등을 내 주는 사람들. 그저 따듯한 눈길이나 손길로 함께 하는 사람들. 내년에는 옆에 있어 줘서 당연한 것이 아닌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란 말을 더 많이 했으면 한다. 그래서 내년 달력에 더 작은 메모들이 한가득 찼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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