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17년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 / 중부매일 DB

자선행사가 집중되는 세밑이 왔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는 자선시즌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사람들에게 가장 춥고 배고픈 시기이기 때문이다. 폭설과 한파가 잇따르는 동절기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겐 삶 자체가 고단하고 힘겨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명동이나 청주 성안길, 대전 은행동등 사람들이 붐비는 주요 번화가엔 구세군냄비가 등장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선 홀로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연탄배달을 해주는 뜻 깊은 행사를 갖는다. 또 시회복지공동모금회와 신문과 방송에서도 연례행사처럼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접수받는다. 하지만 올 연말 한파는 곤궁한 사람들에게 더 춥게 느껴질 것이다. 국정혼란을 가져온 최순실 사태, 이영학 사건등으로 기부민심이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모금 추이를 보여주는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 높이는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희망 나눔 캠페인'이 시작한 지 19일째인 지난 14일 기준으로 수은주 높이는 '27.9도'이다. 모금 목표액 3천994억 원 중 1천113억 원(27.9%)이 모였다. 2015년에는 캠페인 17일째 사랑의 온도가 41.1도를 기록했고, 2014년에는 18일째에 41.5도인 것과 비교하면 올해의 기부인심이 얼마나 사나워졌는지 보여준다. 사랑의 열매 관계자는 "대개 연말에는 사랑의 온도 50도, 즉 목표액의 50%를 달성했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모금이 몹시 더디다"고 말했다. 심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도 감소 추세라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아동·장애인 등 특정 사회적 약자 집단에 전문적으로 맞춤형 지원사업을 펼치는 중소 규모 재단들도 운영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후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랑의 온도가 하락한 이유는 기부에 대한 '불신(不信)' 때문이다. 뜻 깊은 일에 쓰라고 온정을 베풀었는데 사익을 추구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대기업들이 최순실씨가 깊숙이 관여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했다가 외려 역풍을 맞는 등 국가의 근간을 흔든 대형 사건의 여파로 기부문화 자체가 위축됐다. 여기에 여중생 살인범 이영학은 '딸의 희소병 치료를 도와 달라'며 모은 10억 원대 후원금 대부분을 고급차를 구입하고 차량 튜닝 등에 탕진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기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됐다.

하지만 이 같은 불신으로 기부문화의 숭고한 의미가 퇴색 되서는 안된다. 정부, 미디어, 비영리단체(NPO)가 나서서 기부를 빙자한 사익행위를 차단하고 기부문화의 가치와 방법을 재정립해야 한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그릇된 행태가 드러났다고 해서 기부문화가 사라진다면 겨울한파에 힘겹게 생활하는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불우장애인등 우리의 이웃들은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기부는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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