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처음 시작된 아카데미상은 수억명의 전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흥미로운
초호화 이벤트로 자리매김돼 왔다. 하지만 마치 헐리우드영화 산업의 예술성에 공식적
인증을 주는 듯한 제스처 뒤에는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협회원
5천여명과 헐리우드 시스템의 주관적이며 편협한 기호와 취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
지난 70여년동안 계속된 그 편애와 냉대의 역사를 간추려본다.

▶아카데미는 우선 큰 덩치, 많은 볼거리에 약하다.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거나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이 배경이 되는 영화들, 혹은 장구한 시간동안 전개되는 거대서사에
곧잘 매혹당하는 것.

82년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간디」는 물론 마하트마 간디의 일대기라는 소재자체의
요인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20년에 걸친 구상작업과 30만명에 달하는 엑스트라의 존재가
작품상 수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작품.

또한 97년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을 비롯, 97년도 「잉글리쉬 페이션트」
(감독 안소니 밍겔라), 87년 「마지막 황제」(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85년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감독 시드니 폴락), 70년 「패튼 대전차군단」(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 등등도 누구에게나 「아카데미표」라는 표식이 눈치채일 만한 작품상 수상작들이다.

이같은 리스트는 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감독 데이비드 린), 59년 「벤허」
(감독 윌리엄 와일러) 등 영화제 전반기로 갈수록 더욱 자주 발견할수 있다.

▶SF나 스릴러, 액션 등 타 장르에 대한 살찬 냉대와는 달리 드라마에 대한 아카데미상의
우호도 흔들림없이 유지돼왔다. 이중 잔잔한 감동이 일렁이는 가족드라마들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사랑을 더욱 듬뿍 받는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감독이 「지옥의 묵시록」으로
미국민들에게 베트남전의 악몽을 환기시켰던 79년 작품상을 수상한 로버트 벤튼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80년 작품상의 「보통 사람들」(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은 급격한
이혼율 증가 등 미국사회의 변화상을 바라보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근심을 반영했으며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애정의 조건」(83)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데 성공한 경우.

가슴벅찬 인간승리의 드라마라면 더욱 환영받는다. 76년 「록키」(감독 존 G 아빌드슨)는
블루컬러 계층의 인간승리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찬사로 작품·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런만큼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사랑받는 것도 당연한
이치가 된다. 94년 「포레스트 검프」(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88년 「레인 맨」(감독 배리
레빈슨)은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장애인 역을 호연한 배우들은 연기상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96년 「샤인」에서 실존인물인 데이비드 헬프갓을 열연한 제프리 러쉬를 비롯,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 「레인 맨」의 더스틴 호프먼,
「나의 왼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작은 신의 아이들」의 말리 매틀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에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75년)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97)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잭 니콜슨 처럼 이상성격자 연기도 주연상 수상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영국 컴플렉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영국문학을 각색한 작품이나 영국출신 감독·
배우들을 애호하는 것도 아카데미상의 두드러진 특징. 지난해 존 매든 감독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작품상 문턱에서 패퇴시켰거니와 「불의 전차」(81·
감독 휴 허드슨) 「간디」(82·리처드 아텐보로)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 작품상 수상작들도
영국출신 감독의 작품들이다. 특히 60년대는 10개의 작품상 중 4개가 영국출신 감독에게
안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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