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파사현정(破邪顯正).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7년 사자성어'다. '그른 것을 깨트려 바른 것을 드러내다'는 뜻이다. '올해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 잘못을 깨트리고 나라를 올바르게 세울 기틀을 마련했다'는 의미에서 선정됐다. 본래 불교용어로, 출처는 중국 수(隨)나라 승려 길장(吉藏)이 지은 <삼론현의(三論玄義)>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018년 사자성어로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선정했다. '거문고 줄을 바꾸어 매다'는 뜻이다. '풀어진 거문고 줄을 조여 매듯 해이해진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잘못된 사회제도를 개혁하다'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올린 <현량대책(賢良對策)>가 출처다.

이처럼 중국 고전 등 출처가 있는 사자성어도 있지만 그냥 단어를 조합한 사자성어도 있다. 망원진세(望遠進世). 충북도의 2018년 사자성어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望遠] 세계 속으로 전진해 나아가자[進世]'는 충북의 의지를 담고 있다.. 화평웅비(和平雄飛). 청주시의 2018년 사자성어다.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에서 기운차게 난다'는 의미다.

연말연시가 되면 자치단체건 기업이건 곳곳 사회집단과 조직에서는 언제부턴가 '가는 년'과 '오는 년'을 위한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대체적으로 이미 다른 곳에서 선정됐거나 쉬운 사자성어는 잘 선정되지 않는다. 출처를 찾기 어렵고 한자어도 무척 난해한 것들이 선호된다. 그래서 사자성어의 출처로 우리 고전보다 중국 고전, 그 것도 아주 오래되고 잘 읽히지 않는 고전이 선택된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를 연출한다.

사자성어(四字成語)는 4개의 한자어로 이루어졌다. '고사 성어(古事成語), 그냥 성어'라고도 한다. 사자성어는 교훈이나 비유, 상징 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어 삶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치 상황이나 사회상을 풍자화에 많이 활용된다. 사자성어의 원조는 역시 중국이다. 중국에는 약 5,000개의 성어가 있다. 일부 중국어 사전은 20,000개 이상의 성어를 담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시작된 사자성어가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전염되어 한 해를 빗대기도 하고 평상시 대화나 글에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실 사자성어를 유효적절하게 자주 사용하면 무척이나 유식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아주 어려운 한자어에다 출처가 접하기 어려운 중국 고전이면 더욱 사자성어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아니? 꼭 이렇게 어려운 한자어에다 중국 고전의 고전까지 뒤져가며 사자성어를 찾아내 특정 해를 풍자하거나 비유해야만 하는가? 물론 선정된 사자성어가 빗댄 의미는 정말 좋다. 수십 년간 응축된 지식과 지혜가 담겨 삶과 사회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특히 한자어는 소리글자가 아닌 뜻글자여서 삶의 철학과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 한자어 자체만도 헤아릴 수 없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절절하고 깊은 사연까지 깃들어 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글이 중국어(한자어)가 아닌 한글이라는 점이다. 훌륭한 한글 제치고 한자어 아니 중국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말이다. 언어 사대주의라 할 수밖에 없다. 한자어가 공교육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신문이나 책 등 많은 매체 역시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는다.(일부 약간의 한자어를 사용). 공기관은 물론 기업 서류에도 한자어는 사라졌다. 심한 말로 어디에도 써먹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자어를 별도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설명서가 없으면 사자성어를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이름 석 자도 한자어로 뭇 쓰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꼭 사자성어를 써야 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사자성어를 선호하다 보니 데나가나 우리 속담을 억지로 한자어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제 논에 물 대기'다. 삼세지습 지우팔십(三歲之習 至于八十),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 이것은 그래도 봐줄만하다. 출처 시대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사자성어도 많다. 본래 의미와 빗댄 현실이 이른바 미스매취(miss match)다. 도대체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조금 안다는 인간들의 지적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냥 우리말로 쓰면 안 될까? 마치 어릴 때 배운 불조심 표어 "꺼진 불도 다시 보자"처럼 "그른 것 깨트려 바른 것 드러내자"라고 말이다. 굳이 한자어를 쓰고 싶다면 다시 한자교육을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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