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셀프주유소. 기사와 직접 관련 없습니다. / 뉴시스

직장인은 '연봉'에 민감하다. 내가 손에 쥐는 것보다 남의 수입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알고 나면 때론 위로가 되고 때로는 심리적인 박탈감에 근로의욕을 잃기도 한다. 얼마 전 언론에 현대자동차와 글로벌자동차회사 근로자의 1인당 평균연봉을 비교한 기사가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는 9700만~9800만원으로 거의 1억 원에 육박했다. 현대차 뿐만 아니라 국내 완성차 5개사 평균 임금도 9213만원에 달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불황으로 현대차 시가총액이 쪼그라들었지만 연봉은 높아졌다. 직장인들에게 화제가 된것은 세계경제 우등생인 독일과 일본 자동차회사 근로자보다 연봉이 더 많다는 점이다. 아우디 8310만원, 폴크스바겐 8050만원, 도요타 9100만원이었다. 완성차 근로자의 연봉만 따지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을 뛰어넘었다.

내년엔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이 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희망대로 되면 그렇다. 최근 정부는 내년에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대에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는 2만7천561달러였다. 정부 예상대로 하면 2006년 2만795달러로 2만 달러대를 처음 돌파한 뒤 13년 만에 3만 달러를 넘어선다. 1인당 GNI는 한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 특히 3만 달러 돌파는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기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190개국 중 27개뿐이었다. 인구 1천만 명 이상 국가 중에는 10개국만 리스트에 올랐다.

내년엔 우리나라는 정부 장담대로 선진국이 되는걸까. 아마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삶의 질 개선을 강조했지만 국가경제가 호전된다고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지진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긴 우리나라의 삶의 질 순위는 2012년 24위에서 지난해 28위, 올해 29위로 추락했다. 빈곤의 기준은 달라졌지만 팍팍한 살림은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선진국은 딴 세상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대기업 귀족노조가 파업을 하고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안정된 임금을 받고 있지만 이들보다 더 많은 근로자들이 살인적인 저임금에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1천947만 명의 임금근로자 중 절반 가까운 이들의 한 달 월급이 200만원에 못 미쳤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 가족 최저생활비 168만원을 간신히 상회하는 수준이다. 무려 1천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 근로자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산층이 점차 축소되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의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올 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을 벌여야 한다. 최저임금이 역대 최대로 오르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그 후유증이 우리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음식점은 아르바이트시간을 줄이고 숙박업체는 정식 고용 인력을 감축하며 주유소는 셀프주유소로 전환하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남아있는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는 더 세졌다.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은 더 심한 한파에 시달릴 것이다. 대한상의 부회장의 "중소기업 다 죽게 생겼다"는 호소가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청년들이 성실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줄어든다. 결혼과 내 집 마련의 희망은 한낱 비현실적인 꿈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정부가 친기업적인 정책으로 투자의지를 이끌어내고 창업정신을 일깨우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키울 규제철폐와 노동개혁은 뒷전인 채 일방적인 노동편향정책으로 노골적인 반(反)기업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공공부문 채용을 늘리고 중소기업 인건비를 지원한다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재정부담은 세금으로 막아야 한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을 흔히 '20대80의 사회'라고 한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대다수가 서민층 내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3% 성장과 3만달러 소득을 의미하는 3·3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생활난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사회통합을 기대하긴 힘들다. 선진국 진입은 쌍수로 환영할 일이지만 짙은 그늘 속에 있는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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