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 중부매일 DB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은 한국인의 창조적인 정신과 우수한 문화적인 DNA를 드러낸 대표적인 불교서적이다. 청주 흥덕사지는 금속활자를 역사상 처음 만든 인쇄문화의 요람이다. 하지만 2010년 9월 사립미술관인 서울 다보성고미술관이 고려시대 금속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 12점을 확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쟁과 과학적인 조사가 7년간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 같은 공방은 결국 지난해 4월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증도가자의 보물가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보물지정이 불가하다"고 의결했기 때문이다. 문화계의 뜨거운 이슈가 됐던 이 사건은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불순한 의도가 개입됐다는 설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증도가자를 진품이라고 주장한 지방국립대 A교수를 불기소 처분해 의혹이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증폭되고 있다.

A교수가 충북대학교에 의뢰해 3차원(3D) 금속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결과 "증도가자 등 고려활자 7개에서 1930년대 발명된 인공원소인 Tc(테크네튬)성분이 검출된 것이 발견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A 교수는 이 부분을 체크하지 못했었고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관이 "이 원소는 20세기에서나 볼 수 있는 원소"라고 지적했다. CT 및 성분 분석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고려시대 전통적 방식의 주물 기법에 의해 제작된 활자가 아니고 위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930년대 발명된 인공원소인 Tc(테크네튬)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증도가자는 당연히 가짜다. 증도가자 공개와 관련된 인물과 과정도 석연치 않다. 다보성미술관 김종춘 관장(한국고미술협회장)은 횡령과 사기,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의 원심이 확정됐다. 하지만 검찰은 A 교수를 불기소 처분했다.

A 교수의 행위로 볼 때 납득하기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증도가자라고 주장한 활자 감정 과정에서 교수들의 서명을 위조했다. 또 도굴의심 문화재를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임의로 맡긴 혐의도 있다. 이런 A 교수로 부터 가짜 증도가자 7개를 8천만 원에 구입한 청주고인쇄박물관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법적인 처분을 떠나 청주시 차원에서 구입배경도 면밀히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양인들이 세계최고 금속활자본으로 믿었던 구덴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직지가 한참 앞섰지만 고려시대의 인쇄기술로 볼 때 세계최고 타이틀이 반드시 영원한 것은 아니다. 학자의 입장에서 출처와 소장경위가 뚜렷하다면 새로 발견한 활자를 세계최고 금속활자로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굴·도난 문화재 혐의가 짙은 활자를 사문서까지 위조한 뒤 마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것처럼 발표한 것은 그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최고 금속활자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인류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공명심과 물욕에 사로잡힌 사설 박물관장이나 학자들까지 나서서 진품을 발견했다며 세상을 현혹시키고 오랜 기간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전문가들조차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이 같은 비윤리적인 행태가 처벌받지 못한다면 유사사건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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