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자' 사기극과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증도가자' 사기극과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8.01.07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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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 중부매일 DB

조선 초기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이라는 화가가 있다. 조선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안견의 화풍은 일본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그림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400년 전 사라졌던 안견의 '벽안도' 복원 프로젝트가 세인의 관심 속에 세상에 공개된다. 복원에 성공한다면 한국 최고가로 경매될 것이 틀림없다. 그림을 손에 넣은 미술계의 큰 손인 갤러리 '비문'의 회장은 '신(神)의 손'을 가졌다는 복원 전문가를 스카우트하고 400억짜리 벽안도 살리기 작업에 나선다' 현실과 상상이 혼재한 '한국화'를 둘러싼 황당한 사기극. 8년 전에 개봉한 영화 '인사동 스캔들'의 줄거리다.

그 사기극이 현실에서도 발생했다. 이번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가 주인공이고 주무대는 청주시다. 때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9월 서울 다보성미술관은 문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발표를 했다. 고려시대 금속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 12점이 진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진품이라면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년)보다 무려 138년이나 앞서서 만들어 진 것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중 하나로 꼽히는 금속활자의 제작시기가 훨씬 앞당겨 질 수 있다. 당시 서지학자인 지방국립대 N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도가자 연구결과를 발표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청주시고인쇄박물관은 N 교수가 제시한 보증서를 믿고 증도가자 활자 7개를 8천여만 원에 구입했다. N 교수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왕실 주조 금속활자 복원사업 책임연구원으로 금속활자 복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증도가자를 거액에 구입하도록 했다. 또 김종춘 다보성고미술관장은 부인 이모씨 명의로 증도가자를 문화재청에 '보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시중에는 서울 인사동 뒷골목에서 십만 원 안팎의 짝퉁 증도가자 활자가 은밀히 거래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보물로 지정되는 순간 개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요즘 '비트코인 대박'에 버금가는 호재였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7년간 지속됐던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충북대에서 N 교수에게 의뢰받아 검증한 결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증도가자 7개에 대한 3차원(3D) 금속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모두에서 인위적인 조작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측도 1930년대 발명된 인공원소인 Tc(테크네륨)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증도가자에 대한 부실한 검증으로 진품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몇 곳의 공공연구기관이 망신을 당했다. '고려시대 금속활자 스캔들'의 클라이막스는 지난 2일 경찰의 추적을 받던 김종춘 관장(한국고미술협회장)의 자수다. 그는 고미술협회 직원들을 통해 감정위원들에게 가짜를 진품으로 감정하도록 지시했고 자신이 소유한 금동반가사유상등의 시가(市價)를 높이기 위해 허위 감정하도록 한 혐의로 지난달 22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형을 받았으나 병원에 있다가 잠적했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막을 내렸지만 '금속활자 스캔들'은 시리즈로 상영 될 수도 있다. 고려 고종때인 1200년대 초반 관주활자로 불리던 증도가자와 '상정예문자'라는 금속활자를 갖고 '상정예문' 28부를 찍어낸 기록이 있다.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 장난칠 수 있다. 또 이 사건과 연루됐다가 검찰로 부터 석연치 않은 불기소처분을 받은 N 교수가 지난 2013년 청주고인쇄박물관에 맡긴 출처불명의 유물 1만여 점 처리도 관심사다. 유물 일부는 도난당했거나 잃어버린 주인이 찾아가기도 했다. N 교수는 사문서위조와 도굴·도난 문화재 취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바 있으나 풀려났다. 청주시는 기증받지도 못한 유물을 맡아 관리하고 목록을 작성하느라 혈세만 낭비한 채 다시 되돌려주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짝퉁 중도가자 활자를 개당 1천200여만 원에 구입하게 된 과정도 의문시된다. 이 활자를 진품이라며 보증서에 사인한 3명의 서지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명을 도용당했다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청주시는 철저히 이용당하며 사기극의 피해자가 됐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세계최고 금속활자는 고려가 당대 초일류미디어 강국이자 한국인의 우수한 문화적인 DNA를 상징하는 발명품이다. 그런 소중한 문화유산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건은 까면 깔수록 흥미진진하고 미스테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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