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육영수 생가 '옥천교동집'
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육영수 생가 '옥천교동집'
  • 중부매일
  • 승인 2018.01.0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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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 한옥 '삼(三)정승과 대지주의 집'

500여 년 전, 이곳에 김(金)정승, 송(宋)정승, 민(閔)정승의 삼(三)정승이 살았다. 처음에는 김정승이 아흔아홉 칸의 한옥을 짓고 살았다. 이어 송정승과 민정승이 차례로 그 집에서 주인 노릇을 했는데 이들은 옥천에서 가장 잘 나가던 부농이자 권력자였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이 동네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는지는 전해오는 자료가 없다. 다만 분명했던 것은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땅을 밟지 않으면 길을 오갈 수 없었다. 궁궐같은 집안에서 일하는 머슴들만 해도 100여 명은 되었고, 소작농들도 수백 명에 달했다.

김정승은 옥천의 내로라하는 사대부였다. 조정을 드나들 정도의 벼슬을 얻었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이 가득했다. 그래서 99칸의 한옥을 지을 수 있었다. 집 주인이 머무는 안채를 중심으로 위채, 아래채, 사랑채, 정자, 연못, 사당 등을 지었다. 한옥에서 한 칸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 한다.

해 뜨는 쪽에는 큰 대문을, 해 지는 쪽에는 작은 대문을 두었다. 빙 둘러 높은 돌담도 쌓았다. 드넓은 대지와 산과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바람과 햇살과 구름도 이곳에서 쉬어가는 최고의 명당이었다. 교동리에 자리잡고 있어 교동집이라고도 불렸다.

김정승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탐관오리로 낙인찍히면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송정승이 99칸의 주인이 되었다. 송정승은 처음부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자수성가라고 해야 할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공부해서 벼슬을 얻었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다. 자식들이 이 모든 권력과 재산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심은 흉흉했다. 터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명당이라는 이름만으로 권력과 재산을 탐하면서 가세가 기울고 터의 기운까지 빼앗기고 있다고 숙덕였다.

다시 이 집 주인은 민정승으로 바뀌었다. 전에 살던 두 정승과 달리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년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을 위해 잔치를 열기도 했다. 후손들도 민정승의 뜻을 기려 결코 가볍게 행동하지 않았으며 옥답을 지키는데 힘썼다.

세월이 흘러 1918년 어느 날, 인근 능월리의 대지주 육종관 씨가 교동집을 사들였다. 민정승 자손의 가게가 기울기 시작하고 육 씨네가 승승장구 할 때였다. 육 씨는 아버지 육용필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들은 서울로 출향했고 자신이 이 모든 전답을 관리해야 했다. 세상이 수상한 시절이었다. 육 씨는 친일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더욱 곤고히 했다. 그는 본처 외에 3명의 첩을 두었고 22명(12남 10녀)의 자식을 낳았다. 육영수 여사도 그 중 하나였다.

교동리 한옥은 풍미 깊은 곳이다. 아흔아홉 칸 한옥 안으로 들어가 보자. 대문을 여는 순간 곡선의 기와와 대청마루와 대들보가 활짝 웃으며 나그네를 반긴다. 한 눈에 봐도 정승집이고 대지주의 집이다. 가진 자의 욕망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우리 문화의 원형을 만날 수 있으니 편견을 버리자.

이곳은 한 칸 한 칸이 자연이고 역사이며 삶이자 지혜다. 한국의 미는 선에 있지 않던가. 중국은 형(形), 일본은 색(色), 그리고 한국은 선(線)이라고 했다. 그 선을 따라 교동집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조상들의 지혜와 한옥의 절경과 삶의 미학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한옥의 백미는 자연성이다.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건축이 한옥인 것이다. 배산임수의 공간배치, 소재의 친환경성, 자연스러운 쓰임…. 그러면서도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담았다. 암키와·수키와의 조화속에 탄생한 곡선의 지붕, 육중한 지붕의 무게가 부력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처마의 기품, 바람과 햇살과 구름도 쉬어가게 하는 문풍지, 남자와 여인·어른과 아이·선비와 천민 등 각자의 역할에 맞게 구조화된 크고 작은 방, 날숨과 들숨으로 발효과학을 완성시키는 장독대, 부엌과 굴뚝과 우물과 담장이 빚어낸 아련했던 옛 추억들이 삼삼하다.

문득 저 문풍지 사이로 다듬이질 하는 여인의 실루엣이 은은하다. 눈 오는 새벽 싸리 빗자루 들고 아침을 쓸고 있을 마당쇠가 눈에 어린다. 부엌에선 밥 짓는 소리가, 장독대에선 장 익는 냄새 가득하다. 내 마음에 스미고 젖고 물든다.

글·사진/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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