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8 무술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8.01.10.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삶의 질'이다. 국정농단의 여파로 나라가 혼돈에 빠졌던 지난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염원에 따라 가장 많이 등장했던 키워드가 '적폐 청산'이라면 집권 2년 차인 올해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도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아 국민 여러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데 이어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경제 정책을 가장 먼저 언급하며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인상 등 손에 잡히는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하지만 이날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에 달한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삶의 질'을 무색케 했다. 이는 큰 폭(16.4%)으로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예상 밖으로 심하고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정책으로 구직 단념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상당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는 커지고 박봉에도 일자리를 얻으려는 서민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호재(好材)가 아니라 악재(惡材)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상승이 일시적으로 일부 한계기업의 고용을 줄일 가능성은 있지만, 정착되면 오히려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임금인상을 한다면 누구나 쌍수로 환영하고 지갑이 두툼해지면 소비도 늘어나면서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근로자를 감축하고 근무시간을 줄여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물가도 오르고 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일자리 불안과 실질적인 소득감소가 우려되면서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정부가 대안으로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 지급'정책을 제시했지만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면 고용지표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취업자 증가 폭이 3개월 연속 20만명대에 머문 것은 금융위기 시절인 2007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장기간 30만명 대 미만을 기록한 후 처음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삶의 질을 따질 수 있지만 일자리조차 찾기 힘들면 삶의 의욕을 잃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탁상공론의 역설(逆說)이다.

이낙연 총리는 "근로자의 저임금과 과로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것, 소득의 가파른 양극화를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다. 양극화 현상은 해소해야 하지만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부작용만 낳는다. 고용시장은 위축되고 영세 사업자들은 경영난에 허덕이게 된다. 대기업 귀족노조에겐 유화적이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팔을 비트는 정책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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