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수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항우와 유방의 결전을 다룬 영화 이인항 作, '초한지-천하대전' 스크린샷(왼쪽 유방역의 여명, 오른족 항우역의 풍소봉) / http://movie.daum.net

중국의 역사에서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처럼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도 없다. 항우는 초나라 귀족 출신으로 키가 8척에 산을 뽑아낼 정도로 힘과 기개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학벌과 가문이 좋은 엘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진시황의 행차를 보고 '내가 저 자를 내치고 저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야심도 큰 사람이었다. 24세부터 장수로 활약하였고 27세에는 패왕의 지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하였다.

유방은 '사기'의 고조본기 편에 "주색을 좋아해 늘 주점에서 외상으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그 자리에 드러눕곤 했다"라고 기록됐을 정도로 술과 여자를 즐기는 한량이었다. 고향에서 유방은 시정잡배 취급을 받았다. 나이 30세에 정장이라는 말단 관리로 채용됐다. 이렇게 대조적인 태생, 자질, 환경을 타고났는데도 천하통일은 항우가 아니라 유방의 몫이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가장 좋은 답은 천운(天運)이다. 하늘이 돕지 않는다면 경쟁이 되지 않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을 받아들일 자질이 있어야 하늘도 도움을 베풀 수 있다.

그 자질은 다름 아닌 성품이다. 항우와의 경쟁에서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먼저 입성하여 한왕(漢王)을 칭하고, 가장 먼저 약법삼장(約法三章)만을 남겨두고 복잡한 법과 규제를 철폐해버린다. 진나라의 잔혹한 법 때문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살인죄, 상해죄, 절도죄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법령을 철폐해 버린 것이다. 이는 유방이 스스로 겪은 고생에 비추어서 백성들의 고초를 헤아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성품이 좋은 사람에게는 사람이 따른다. 유방은 사람들을 인덕으로 다스렸고, 이에 따르는 인물들이 많았다. 유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장량처럼 교묘한 책략가도 아니고 행정을 잘 살피고 군량을 보급하는 일에 소하처럼 능하지도 않다.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에서 이기는 일은 한신을 따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세 사람을 곁에 두고 제대로 쓸 줄 안다. 반면 항우는 범증 한 사람 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내쳤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고 항우는 얻지 못한 이유이다."

범증이 항우의 곁에 있는 동안 초나라는 승승장구하였으며 유방의 한나라는 궤멸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유방 측의 계략에 말려들어가 항우가 범증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자 범증은 항우의 곁을 떠난다. 범증이 항우를 떠난 이후 초나라는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결국 항우는 30세에 오강(烏江)가에서 한나라 군대와 일전을 벌이다 자결하고 만다.

김수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벌이나 능력, 출생성분에서 보면 유방은 항우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이 도우려고 할 때 좋은 품성의 유방은 민심을 얻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교만하고 포악한 항우는 하늘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리하고 부지런해서 혼자 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주사는 될 수 있지만 리더가 될 수는 없다. 일을 나누어 주어야 일하는 사람도 신이 나고 능률이 오르는 법이다. 주변에 다 나누어주고 자신은 하는 일이 없지만 안 되는 일이 없게 하는 능력이 바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다. 유방을 통해서 허허실실(虛虛實實)이 진정한 지혜라는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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