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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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중심(個人中心)'사회이다. 그동안 교육은 '우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욜로 시대에서는 '나'가 중요하다. 요즘 젊은 층은 미래보다 현재에 집착한다. 적금 들어 집을 장만하는 것은 산업 사회의 유물이다. 고통을 참고 견디면 행복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마시멜로효과는 이론일 뿐이다. 오로지 미래를 위해 자산을 축적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 사회의 생각으로만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즉 청년들이 추구하는 현실의 즐거움을 순간의 쾌락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현실을 도외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그 자체로 경제체계를 만들어야 하고, 또한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다소 걱정스러운 것은 미래에 관심이 적다보니 과거에도 무관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본래 미래가 없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법이다. 그렇지만 투키디데스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따라서 과거를 알지 못하면 미래가 없는 법이다. 젊은 세대가 짧은 미래조차도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단절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젊은 층의 사고(思考)가 욜로-'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동양 사상에서 '나'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적 의미가 훨씬 중요했다. 우리 역사는 운명공동체와도 같았다. 조선 시대 도덕률 하나가 향약(鄕約)이었다. 향약의 4대 강목을 보면 '서로(相)'에 방점을 찍고 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도와주려는 호생(互生)의 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서양 사상에서 나타난 공리주의(功利主義)도 개인과 우리의 의미를 훌륭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른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개인의 좋음과 사회 전체의 좋음이 조화롭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사건사고를 접해보면 각박해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서도 고스란히 돋아나고 있다. 경영자는 조회시간에 기업의 미래를 말한다. 그렇지만 젊은이는 당장 월급이나 올려달라고 푸념한다. 일하는 즐거움 또는 인생의 보람 따위엔 관심이 없다. 지금이 중요한 것이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곱다'는 식으로 일단 잘 먹고 보자는 생각이 팽대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고통이나 쾌락을 참으면 훨씬 더 훌륭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가치를 안고 사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혼란한 사회가 이러한 건전한 가치관을 허물고 있다.

그렇다면 가치관이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 기업은 어떻게 조직을 관리할 것인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 정리는 가능하다. 그를 인정해주고 강압적으로 '우리'를 요구하지 말자. 개인을 존중하면서 개인이 조직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줘야 한다. 개인으로서 가치가 집단적 가치보다 강할 때는 진실(眞實)을 말할 때이다. 주운절함(朱雲折檻)과 같은 진실은 수천 조직의 힘보다 강하다. 진실한 사람은 두려움 없이 말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진실한 사람은 사회성이 좋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한 사람들은 경청을 잘한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줘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욜로 시대에서 사람을 이끌고 조직적인 일을 하고자 한다면 진실한 사람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쾌락을 포기하면 미래가 풍성해질 것이라는 단순 산수(算數)식으로는 욜로 시대의 청년을 길들일 수 없다. 기업에서 사회성을 가르쳐야 한다.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사회성이란 욜로 가치관에서 본다면 개인의 참된 자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말씀하는 일의 즐거움과 보람을 무시하고, 당장 월급이나 많이 올려달라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사장님 생각을 침범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켜야 진정 자유인 것이다. 즉 회사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면서 그 성과의 과실(果實)로 자신의 월급을 올려야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유를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쳤다면 사회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는 소양, 예(禮)를 구분할 수 있는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 그 사회가 기업이라면 기업 내의 교육프로그램으로 해야 한다. 학창 시절에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 환경 속에서 얻어진 특별한 것이라면 사회 안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 욜로 시대의 조직관리는 욜로 현상을 수용하면서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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