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시점과 관점이 다르므로 행복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행복한 표정은 남에게 좋은 느낌뿐만 아니라 자기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항상 행복한 표정과 여유 있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때가 많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어머님은 8년 동안이나 병석에 계셨었다. 처음 어머님이 병이 나셨을 때는 어머님이 불쌍하고 안타까워 많이 울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집안일과 시간에 쪼들리는 나 자신이 힘이 들어 눈물 흘릴 때도 있었다.

어머님은 위 천공에 골반까지 다쳐 옴짝달싹 못 하셨다. 의사 선생님도 어머님 연세가 있는 데다 골다공증이 심해 회복되기 어렵단다. 어머님도 불쌍하고 병시중도 걱정되어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학교에 도시락을 싸서 다녔었다. 그것도 고등학생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에 간식까지 준비해야 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고, 병원에 들러 남편과 교대했다가 간병인이 오면 출근한다. 온종일 근무하다 저녁은 대충 때우고, 병원에 갔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11시경에 집에 온다. 남편이 일찍 교대해줄 때도 있지만 극히 드물었다. 그때부터 다음 날 아침과 아이들 도시락 준비를 하고 나면 새벽 1시, 잠이 부족해 쓰러지다가도 가엾은 어머님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십여 개월 병원에 계셔도 차도가 없으니 집으로 가자고 보채셨다. 형제들이나 의사 선생님도 집에서 편안히 계시다 가시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집으로 모셔왔다. 집에서 병원 약과 한약을 교대로 쓰며, 적외선 치료기까지 갖춰놓고 온갖 정성 다해도 차도가 없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2년이 넘자 부축하면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있게 좋아지셨다. 병원에서도 가망 없다고 했는데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 같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일어서실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연세가 있어서인지 더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한결같이 정성을 다했다. 5년이 지나면서 힘에 부쳐 내가 병이 나기 시작했다. 허리를 포함하여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낮에는 간병인이 있지만, 저녁에는 거의 내가 돌보느라 힘이 들어 두통약과 위장약을 달고 살 정도로 몸은 쇠약해 갔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사라졌다.

소망의 집이나 에덴원 등 사회복지 시설을 방문해보면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서로 도와가며, 정상인들 보다 훨씬 해맑은 미소로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행복한 표정의 그들을 보면서 어머니 병간호 몇 년 했다고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해맑지는 못하더라도 찌푸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어머님 용변을 받아낼 때는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역한 냄새를 향내로 느끼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어 보지만 생각만큼 싶지가 않다. 마음을 다잡고 '컬트트리플의 얼굴 찌푸리지 말라' 는 시를 중얼거려도 어느새 찡그려졌다. 옆에서 보던 딸아이가 "엄마! 그렇게 찌푸리다가는 진짜 찡그린 얼굴 된다." 하고 놀리면, 그때야 깜짝 놀라 "아니 안 찡그려" 하고는 계면쩍게 웃는다. 대학생이 된 딸은 생글생글 웃으며 할머니 목욕시키고 용변도 잘 받아 내는데, 며느리인 나는 마음뿐 아닌지 자성해 본다.

용모도 아름다운 데다 솜씨, 맵시, 지혜까지 겸비한 어머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였다. 그런 분이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니 그 심정 어떻겠나 싶어 정성을 다하지만, 늘 부족함이 느껴진다.

말년에 치매까지 있어 고생하시던 어머님은 90세 되던 해 따뜻한 봄날, 고운 분홍색 실크 한복 입고 평온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평소 맏며느리 사랑이 대단하시더니 가시면서도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시고는.

어머님 삼우제 날 향교에서 효자·효부상 시상식이 있다며 참석하란다. 영문을 몰라 하니 이웃 주민의 추천으로 우리 내외가 효자·효부로 선정되었단다. 천수를 다하셨다고는 하나 삼우제 날인 데다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뿐인데 상을 받는다는 것이 민망해 사양하니 안 된다고 한다. 행사시간을 미룰 테니 꼭 참석하라고 하여 삼우제 끝나고 참석했다. 효자·효부 상패를 받는 순간 어머님의 부드러운 손길,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애이불비하던 남편도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 시상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시울을 촉촉이 적셨다.

이난영 수필가

수필집 '난을 기르며'와 '행복 부스터'도 어머님의 선물이지 싶다. 문학에 대한 막연한 꿈은 있었으나 공직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주시던 어머님이 오랫동안 편찮으실 때 삶에 활력소를 찾고자 글을 쓰기 시작해 등단하고, 수필집을 두 권이나 발간하게 되었으니 이는 오롯이 어머님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늘 네가 최고다." 라고, 하시던 어머님!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자애로웠던 어머님 모습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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