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8주년 탐사기획 일자리 리포트]
항공사 승무원 취준생 강주리 씨

비행기 승무원을 꿈꾸며 누구보다 치열한 '취업 준비생' 기간을 지내고 있는 강주리씨가 1년 동안 준비한 면접 준비노트를 펼쳐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저는 이 시기를 단순히 취업준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상'을 준비하는거죠. 힘들고 고된 시간이지만 분명히 저는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한 강주리(26·여)씨는 승무원을 꿈꾸는 '취업 준비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더 혹독했다. 지난해 지원했던 항공사 3곳에 최종 면접까지 치렀지만 '최종 합격'의 문턱은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이력서 한줄부터 면접까지 쉼없이 달려온 일련의 과정을 접고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했던 발걸음은 무거웠다.

"사실 눈물도 많이 흘렸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 스스로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정말 꿈을 이룰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에요"

'취준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그녀. 여기에는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교사의 길을 택하지 않은 그녀의 간절함이 숨어있었다.

강 씨가 교사가 되길 바랐던 것은 가족의 오랜 희망이었다. 그런 가족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범대학에 진학했지만 꿈과 멀어질 수록 갈증은 더 커져만 갔다. 휴학을 결정할 정도로 진로에 대해 고민했지만 답은 '꿈'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공부에 나선 그녀는 승무원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온전히 공부와 면접준비로 시간을 보낸다는 강 씨. 아침과 점심식사를 한끼로 해결할 정도로 숨 가쁜 하루를 보내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잖아요. 공부할 때와 쉴 때가 구분돼야 하는데 쉬고 있으면 스스로 불안해 지더라고요"

두달 전부터 회계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취준생에게 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공부도 힘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이 더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안감을 떨치고자 틈틈이 공부해 취득한 자격증도 여러개다. 컴퓨터사무자동화,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한자 3급, 서비스경영능력(SMAT) 2급, 한국사능력검정 1급이 그녀의 노력을 대변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3년 전부터 하루의 감사한 일 3가지를 매일 일기에 적고 있다. 하루 하루가 공부로 반복되고 단조로운 생활이지만 '감사 일기'는 그런 생활속에서 활기를 찾는 데 도움을 줬다.

"'엄마가 맛있는 반찬을 해줘서 행복했다'처럼 정말 사소한 일들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는 거에요. 그러면 똑같다고 느꼈던 하루 하루가 모두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똑소리 나게 차근히 승무원의 꿈에 다가가고 있던 그녀가 최근들어 힘든 시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모 업체가 외국 항공사 채용을 대행한다며 승무원 준비생들을 상대로 취업 사기를 벌였다는 기사를 접한 다음이었다.

"기사를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저라고 그러지 않았을 거란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 마음을 다 아니까…."

취준생들의 고충은 사회에 비춰진 모습보다 더 무거웠다. 강 씨는 얼마전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공부가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해 본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다시 느꼈죠. '지금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아닌가'라고 말이에요"

취준생인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취업이 된 사람과 준비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주변에서 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하고 싶어도 망설여 진다고 말했다. 기쁜 소식이지만 스스로가 초조하고 성급해지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제대로된 축하 인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취준생 생활인 것이다. 사사로운 걱정에도 그녀가 마음을 부여잡고 묵묵히 이 시기를 버티는 데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의 응원이 없다면 버티기 힘든 시간인 것 같아요. 저도 하루빨리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요. 첫 월급도 부모님께 전부 드릴 거에요"

'부모님'이라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대학시절 결혼식 예도부터 야간 빵 공장, 판촉 아르바이트까지 온갖 일을 해오며 스스로 용돈을 벌어 생활했다. 하지만 학원 수업과 스터디, 면접 등으로 대학생 때보다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자연스레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용돈을 타 쓰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일까. 그녀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제는 저만의 꿈이 아니에요. 우리 가족 모두의 꿈이 됐죠. 그런데 제가 감히 어떻게 지칠 수가 있겠어요"

상대방의 언어로 먼저 인사를 하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대학시절 수화까지 배웠다고 말했다. 비행기에서 어떤 승객을 만날 지 모른다는 작은 배려에서 출발한 공부였다.

또 그녀는 아직까지 해외 여행을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었다. 꿈을 이룬 뒤 비행 일정을 통해 가겠다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확실한 목표가 담겨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과의 약속을 실현시킬 그 날을 생각하며 내일도 달릴 것이다.

"제 인생을 한 장의 세계지도에 그릴겁니다. 꿈을 이뤄서 전 세계 곳곳을 다닐겁니다. 훗날 모든 나라에 저의 발자취를 남길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거에요"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