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청동 숟가락 끝이 날렵한 나뭇잎 같다. 목부터 휘어진 숟가락은 자루 끝부분도 제비꼬리처럼 두 갈래로 갈라 멋을 부려놓았다. 국물을 뜨면 갈라진 틈으로 새어나가지 않았을까? 몸체는 음식을 먹기 불편할 정도로 길고 손잡이도 지나치게 휘어져있어 실용적이지는 않을 듯싶은데, 고려시대에 저렇게 세련된 숟가락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숟가락을 무수히 들었을 주인은 어디가고 시공을 초월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가. 문물이 많이 발전했지만 고려시대에 비하면 현재의 숟가락은 멋보다는 실용성에 가깝다. 매일 밥상에서 마주하는 숟가락. 바쁜 일상에서 하루에 세 번이나 두 번, 어떤 때는 한번, 식탁에 놓였다가 소임을 다하면 씻겨 수저통에서 묵상에 잠겨있다.

우리나라 밥상은 한꺼번에 차려놓고 여럿이서 먹는다. 살강 아래에서 수저통에 수저가 꽉 차던 시절이 그립다. 커다란 양푼에 밥 비벼서 숟가락이 들락거리며 때론 숟가락끼리 부딪치면서 떠먹던 그 시절. 달창 숟가락으로 감자껍질을 벗겨 호박 썰어 넣고 밀가루 반죽을 숟가락으로 뚝 뚝 떼어내서 끓였던 수제비는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단한 일상을 접고 들어온 식구들이 따끈한 수제비 한 그릇 맛나게 먹으면 떼꾼함이 사라졌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양을 끓여서 더 맛있었지 싶다. 여러 재료를 넣어 오래 끓이면 재료마다의 맛이 어우러져 깊고 오묘한 맛이 우러나서 그러하리라. 식구가 적어진 요즘. 갖가지 재료를 넣어 육수까지 내어 끓여보지만 어렸을 적 먹던 맛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수저를 놓고 기다리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숟가락 속에 내가 거꾸로 있었다. 숟가락을 뒤집어 볼록한 면에 얼굴을 보면 온전한 내가 있다. 오목한 면과 볼록한 면을 가지고 있는 숟가락은 양면거울이며 소우주다. 삶의 안과 밖이 담겨있기에 그러하다. 신기해서 앞과 뒤를 번갈아 비추며 신기해했다. 숟가락을 들 수 있다는 건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이유식을 먹을 때부터 숟가락은 우리와 평생을 같이 한다. '밥 한술 뜬다.'는 표현이 있다. 밥을 먹기 힘겨울 때 억지로라도 먹어보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주는 것이 숟가락의 소임이다. 병간호를 하던 때가 있었다. 병이 깊을 무렵에는 누룽지 두 숟가락밖에 먹지 못해도 숟가락을 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병원 개수대에서 그릇을 씻을 때 옆에 있던 보호자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무척 부러워했다. 콧속으로 연결된 줄에 커다란 주사기로 미움을 넣어주기 때문이다. 멀건 미움이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서 생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모임득 수필가

콕콕 찍어먹는 포크에 비해 국물까지도 담아 올려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숟가락이다. 밥 한 숟가락이라도 씹어 삼킬 수 있다면 찬이 변변해도 무한한 행복이다. 청주박물관에 있는 숟가락도 대식구가 부딪치며 살아내던 밥상이 있었으리라. 땅속에서 오래도록 부장되어 있다가 발굴되어 세상 빛을 본다. 얼마나 많이 주인의 입을 들락거리며 공양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숟가락은 삶과 죽음의 아주 얇은 경계이다. 밥술을 놓고 떠난 주인 입에 저 숟가락으로 어떤 음식들이 뜨여지고 들어갔을까? 고려시대 숟가락을 보며 추억 한 자락, 아득한 생의 밥 한 숟가락을 더듬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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