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매운 겨울이 슬쩍 비켜서면 집집의 대문마다 흰 종이에 글을 써 붙인다. 집안의 어른이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껏 목욕재개하고 먹을 갈아 눈을 비비며 써 붙였으리라. 대표적인 글귀로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 하라.' 는 입춘대길 立春大吉이다. 대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건양다경 建陽多慶과 함께 써 붙인다. 지방과 집안의 학식에 따라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부모는 천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수여산 부여해(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등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모두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을 축수하는 소망들이다. 이를 '입춘첩' 또는 '입춘축'이라고 부른다.

세시기를 살펴본다. 입춘기간은 대개 양력 2월 4일경, 태양이 시황경 315°에 왔을 때를 입춘 입기일로 하여 이후 약 15일간이 된다.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로, 동양에서는 이 날부터 봄이라고는 하지만 추위는 아직도 강하다. 입춘 전날이 '절분'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고, 이때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입춘을 마치 연초처럼 본다. 설날이 되면 대궐에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시를 지어 올렸는데 이때 잘 지어진 글을 기둥이나 난간에 붙이고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이것이 전래되어 양반집과 민가나 상가의 대문과 기둥에 글귀를 붙이는 풍습이 생겼다. 또한 입춘에는 한해의 액운을 물리치고 재수를 기원하는 굿을 하기도 하는데 이를 '입춘굿'이라고 한다. 입춘은 긴긴 겨울이 끝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시작된다는 바로 시점이다. 때 맞춰 한반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남북이 급격히 물꼬를 트고 해빙무드를 타고 있다. 평창 올림픽을 기하여 한반도에 봄은 오는가?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북과의 대화와 접촉은 남쪽의 한없는 인내와 굴종을 뜻하는 것은 아닌지 정책 당국은 잘 살펴야 한다. 통일은 대의명분이 아니라 국민의 자긍심과 국가로서의 자존감이 상처를 입지 않는 정도에서 서서히 진행 되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서두르는 품이 걱정스럽다. 더욱이 변하지 않는 북한의 고압적이 태도와 주변국들의 우려에도 평화 올림픽이라는 명제로 밀어 붙이는 것에 일각에서는 우려를 금치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 북한의 한 여성이 시찰차 방남 한 것을 가지고 매스컴이 온갖 과잉 보도를 하는 것에 국민들은 이미 식상해 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가 스스로 인정 하였듯이 20대~30대의 예상치 못한 반발이 아주 거세다. 그들은 돌연 발표된 남북 합동 팀 결성으로 인하여 동년배의 여자 하키 대표 팀의 꿈과 희망을 마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 낸 자신들의 천재일우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으로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어떤 경우라도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민 개개인의 긍지를 훼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에 보장된 자유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국체이다. 평창올림픽을 즈음하여 여전히 마치 대한민국을 길들이는 듯한 북한의 태도에 마냥 끌려다니는 듯한 정부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기만 하다. 국민의 정서를 도외시하고 밀어 붙이기 식의 북한과의 결합은 민족통일이라는 큰 가치를 이루어 가고 있을지라도 머지않아 결국 큰 부담으로 닥쳐 올 수가 있다. 통일은 특정 지도자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적 과제이자 사명이지만 서둘러서는 안 되며 제도의 통합이나 단일화보다 우리가 통일이란 이름으로 누릴' 삶의 내용'이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7천만 겨레의 마음이 하나로 묶이는 정신과 과정을 중시하는 정서적인 통일이 필요 한 때이다. 입춘이 다가 오는 이때, 순박한 강원도 땅 평창에서 열리는 인류의 축제인 동계 올림픽이 한반도의 '입춘대길 건양대경'이 되어 진정한 민족 구성원의 행복이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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