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소상공인] 35. 서문시장 그릇가게 '삼화기물' 정지윤·이상욱 대표

48년간 청주서문시장 내에서 한 자리를 지켜온 '삼화기물' (사진 왼쪽부터) 정지윤 대표, 아내 이상욱씨, 아들 승호씨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그릇에는 담아내기와 비워내기 미학이 있다. 무엇을 담아내고 어떻게 비워낼 것인가. 48년간 그릇을 팔아온 '삼화기물' 정지윤(53)·이상욱(50·여) 부부는 그릇에 '건강'과 '행복'을 담아 판다고 했다.

"밥상머리에 가족이 모이니까 예쁜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서 함께 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게 행복이죠. 그릇 사가서 사람들이 부자 되고 건강해지면 좋겠어요."(이상욱)

"그릇에 정(情)을 담고 싶어요."(정지윤)

'삼화기물'은 1970년 청주서문시장 안에서 문을 열었다. 35평짜리 한 칸에서 시작해 지금은 1~2층과 별관을 포함해 총 100여평으로 넓혔다. 5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며 부친 정두훈(77)씨의 가업을 잇고 있다.

청주시 상당구 서문시장(삼겹살거리)에 위치한 '삼화기물' 외부 전경. / 김용수

정 사장네는 그릇집 집안이다. 외삼촌이 청주시 남주동에서 '영흥기물', 고모부가 남주동 '서울기물'을 하고 있고, 큰이모가 '시장기물'을 20년간 운영하다가 접었다. 부친이 충북·남지역 그릇도매를 시작한뒤 이후 친척들이 손을 보태면서 청주의 그릇소매점 몇 곳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70년대, 아버지가 트럭 두 대로 장날을 쫓아다니면서 그릇가게들에 납품하는 일을 하셨어요. 이후 20년뒤, 도매는 고모부에게, 소매는 제게 넘겨주셨어요."(정지윤)

정 사장 부부가 가게를 물려받은 건 1997년 7월 1일. 그의 나이 서른 셋이었다. "바닥부터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게를 받기 전 93년부터 5년간 직원으로 일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삼화기물'의 4번째 사장이다. 2~3대 사장은 부친의 지인이 10년간 맡았었다.

"1997년 IMF때 저희가 가게를 맡았는데 그 때가 장사가 제일 잘됐고 계속 바닥을 치고 있어요. 봄이 오면 장사가 잘 돼요. 빨리 꽃피는 봄이 오면 좋겠어요."(이상욱)

그릇에도 유행이 있을까.

"그릇은 옷하고 똑같아요. 유행을 많이 타요. 옛날에는 그릇을 오래 썼는데 요즘은 새로운 게 계속 나오니까 소량 다품목으로 바꿔줘야 해요."(정지윤)

"옛날에는 도자기가 인기였다면 요즘은 가벼운 멜라민 소재를 선호해요. 색깔도 흰 그릇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노랑, 연두, 검정 등 다양해졌죠. 경기가 안좋은 영향인지 스테인리스도 많이 찾아요. 안 깨지고 오래 쓰니까."(이상욱)

'삼화기물'의 5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손때 묻은 '돈통'이 계산대 앞에 자리잡고 있다. 가게 초창기에는 하루 장사를 하고 나면 돈통이 현금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 김용수

계산대 앞에는 가게의 50년 역사와 함께 해온 '보물'이 모셔져있다.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는 목재 금고(돈통)에는 지나간 세월의 손때와 돈냄새가 배어있다.

"아버지가 가게 여시면서 직접 목재소 가서 제작하신 금고에요. 옛날에는 하루 장사하고 나면 금고가 꽉 차서 자루에 돈을 담았었다고 들었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에 금고를 크게 만드신 것 같아요. 저희 집의 '역사'이자 '가보'입니다."(정지윤)

인생살이에 희로애락, 굴곡이 있듯이 장사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 6년전 전기누전으로 가게에 큰 불이 나 1억5천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1년반동안 건물수리를 하느라 맞은편 별관에서 장사를 해야 했다.

5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온 '삼화기물' 정지윤(사진 왼쪽)·이상욱 부부는 그릇에 '행복'과 '건강'을 담아 판다고 했다. 부친의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지윤·이상욱 부부가 활짝 웃고 있다. / 김용수

"밤 9시에 불이 났는데 동네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큰 불로 안 번졌어요. 1시간도 안 걸려서 불을 껐어요. 동네사람들이 119에 신고해주고, 소화기 들고 와서 불 꺼주고…. 너무 고마웠어요."

화재 당시 주변 도움을 받은 걸 떠올리니 이 사장은 또 울먹인다. 화재로 '가게'를 잃긴 했지만 주변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불 나고 나서 매출은 떨어졌지만 새로 가게 짓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정지윤)

얼마전에는 정 사장이 후드설비중에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면서 15㎏무게의 스테인리스 후드랑 같이 떨어져 얼굴에 40바늘을 꿰매고 골절상을 입었다.

"11일간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더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정지윤)

'삼화기물' 매장에서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 용도의 일식용 접시와 소품들도 만날 수 있다. / 김용수

화재와 사고는 전화위복이 되어 '재기'하는 계기가 됐다.

"경기가 안 좋으면 마지막에 하는 게 식당인데 식당 시작하려고 그릇 사러 오셔서 외상을 많이 하세요. 한두달뒤 돈벌어서 결제하러 오시면 저도 덩달아 기쁘죠. 우리는 그 분들 덕에 돈을 벌어 희망을 갖고, 그 분들은 우리를 통해 희망을 갖고…"(이상욱)

가게는 2~3년뒤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아들 정승호(26)씨는 '중부권 최고의 그릇집'을 그리고 있다.

"'시장 그릇집'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젊게 운영하고 싶어요. 50년 전통에다 저의 젊은 감각을 섞어서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거죠."(아들 정승호)

정지윤 대표가 아들 승호씨에게 그릇의 용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들 승호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2~3년뒤쯤 가게를 운영할 계획이다. / 김용수

3대가 운영하는 그릇집이 될 '삼화기물', 하지만 차기 젊은 사장도 그릇에 대한 철학은 다르지 않다.

"식탁에 반찬이 많아지면 경제도 살아나고 가정도 건강해지잖아요. 반찬이 늘어나서 그릇도 많이 팔리고 대한민국 경제도 다시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어요."(정승호)

정 사장의 남은 꿈은 이제 하나.

"작은 꿈이 있어요. 캠핑카를 직접 만들어서 전국을 유람하고 싶어요. 장사하느라, 아이 넷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내랑 여행다니고 싶어요."(정지윤)

부부가 매일 매만지고 판매하는 둥글둥글한 그릇처럼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희망해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