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이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기조실장, 변성환 행정안전부 지역경제지원관, 이금로 법무부 차관,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 박경호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허경렬 경찰청 수사국장. 2018.01.29. / 뉴시스

정부는 어제 공공기관·단체 현직 사장과 임직원 중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274명을 즉시 해임해 업무를 배제한 뒤 퇴출하기로 했다. 공공기관·단체의 채용비리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보도되긴 했지만 수사의뢰 대상만 68곳에, 징계·문책을 요구한곳이 119곳에 달한다는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이중에는 한국수출입은행, 정부법무공단, 서울대병원등 고액연봉으로 신도 부러워한다는 직장도 있다. 또 공직유관단체 중에는 충북테크노파크와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도 포함됐다. 기업과 민간단체도 채용과정에서 이 정도로 특혜와 불법이 만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체를 본 청년인재들에겐 돈 없고 배경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것이다. 또 정부가 아무리 경영투명성과 혁신을 주문해도 공공기관^단체장들의 그릇된 마인드로는 절대로 바뀔 리 없다.

채용비리 사례를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수출입은행은 당초 채용 계획과 달리 채용 후보자의 추천 배수를 바꿔 특정인을 채용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 채용이 부결되자 고위 인사의 지시로 다시 위원회를 개최해 불합격자를 최종 합격시켰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고위 관계자의 자녀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면접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해줬고 국제금융센터는 채용시험 미지원자에게 최종면접 응시 기회를 줬다.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직 직장 동료의 자녀에게 최고점수를 부여해 최종 합격자로 만들었다. '신의 직장'답게 채용 과정에서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뽑았다.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비리에 중앙공공기관, 지방공공기관, 공직유관단체 등 946곳에서 모두 4천788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아무리 빼어난 스펙과 실력을 갖춘 청년인재들도 채용시험에 합격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모범을 보여야할 공공기관·단체까지 이정도면 우리사회의 불공정 경쟁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사회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힌바 있다. 이런 점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최종결과와 후속조치, 채용제도 개선방안을 확정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전 정부의 적폐를 찍어내는 식의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는 이 같은 채용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채용비리 연루자에 대한 벌칙·제재조항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말로만 그쳐서는 의미가 없다. 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채용 전 과정을 완전히 공개하고 소규모 채용뿐 아니라 채용자체를 전문대행기관을 지정해 운영하는 등 절차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단체장과 임원·감사자리를 대선 공로자에게 전리품으로 나눠주는 식의 현행 관행도 뜯어고쳐 해당 기관의 특성에 맞는 전문성 있는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

곪을 대로 곪아터진 공공기관·단체의 채용비리는 이번기회에 대수술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공공기관·단체조차 공정한 경쟁을 통해 채용되지 못할 만큼 부패했다면 청년들은 희망대신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