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옥천 둔주봉과 독락정
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 옥천 둔주봉과 독락정
  • 중부매일
  • 승인 2018.02.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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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 병풍삼아 고독을 즐기는 곳, 산과 강을 아우르는 한반도 지형

꿈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현실인 것처럼 선연하게 떠오르는 꿈이었다. 사람의 일에 다투고 쫓기며 달려왔다. 벼랑 끝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소나무 숲과 먹바위 가득한 산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무심했다.

여기서 봇짐을 풀었다. 지난 세월의 아픈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꿈과 사랑도 있었지만 욕망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세상의 일은 언제나 번잡했다. 무엇이 정의인지 한 치 앞을 예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달려온 것이다. 하얀 문풍지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빛과 그늘의 숨바꼭질이었다. 산천은 모든 것이 부질없다며 이곳에서 몸과 마음 부려놓으라고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일(一)자를 10년 동안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고 했던가. 먹 가는 일도 수행이었다. 이따금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다녀가곤 했지만 묵언수행으로 화답했다. 낙향한 사람에겐 세상의 일이 사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날을 반복했다. 달아났던 마음이 되돌아 왔다. 새순 돋기 시작했다.

나는 백일몽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였을까. 어떤 이였을까. 푸른 산과 맑은 물길과 눈부신 햇살을 품은 정자를 지은 이는 누구였을까. 옛 사람들은 건물 하나를 짓는데도 장소성을 중시했다. 햇볕 잘 들고 풍경 좋아야 했다. 물길이 있어야 하고 낙락장송 기암절벽으로 풍미 깊어야 했다.

그 이름도 유별나다. '독락정(獨樂亭)'. 고독을 즐기는 곳이다. 앞뒤로 드넓게 펼쳐진 대자연이 병풍이다. 처음에는 정자 형태로 지었다. 정자는 에콜로지다. 자연의 멋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건축 자체의 설계보다 그것을 세우는 터를 찾아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였다. 초가삼간에서부터 무덤까지 한국인에게 장소성은 종교다. 이데올로기였다.

정자는 더욱 그러하다. 닫힘의 구조가 아니라 열림의 공간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지형지물과 풍경이 마당이고 병풍이며 정원이다. 자연은 그 속에서 예술이 된다. 한 폭의 그림이고 사진이다. 시를 쓰며 읊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곳이다. 자연 속에서 비움의 미학을, 창조의 가치를 얻는다. 하여 정자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되게 한다. 미완(未完)의 집, 풍미 깊은 곳이라는 입소문이 나자 선비들이 자주 찾았다. 자연스레 학문을 탐구하는 서원으로 발전했다. 앞쪽에는 금강(錦江)이 흐르고 뒷산은 용이 춤을 추며 승천하는 기세다. 이 때문에 양기를 맘껏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학문을 정진하며 호연지기를 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독락정에서 안남면사무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면사무소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족하다. 면사무소 담장을 끼고 마을길을 따라갔다. 시골길은 깊고 느리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한국의 시골풍경을 둘러본 뒤 "한 폭의 서예족자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고 닫힘이 아니라 열림이다. 스미고 젖고 물드는 곳이다. 시골길에 서면 옛 추억이 아련하다. 어머니가 마중 나올 것 같다.

논과 밭과 시골집을 따라 오름의 길로 접어들었다. 계곡을 지나 굴곡진 시멘트 길 정상에 '둔주봉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해발 384m의 낮은 산이다. 종일 눈발이 날렸다. 그쳤다가 또 퍼붓곤 했다. 그 틈새를 비집고 햇살이 쏟아지기도 했다. 바람까지 매서워 낮은 산이라고 방심할 수 없다.

산정에 도달했다. 저게 산인가 강인가. 소문대로 한반도 지형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모녀로 보이는 한 쌍은 전망대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가까이 가지 못했다. 모녀의 성스러운 비밀에 노크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요동치던 찬바람도 잠시 멎었다. 산정에 도열한 나목들이 직립의 기상, 오연한 기개를 뽐내고 있었다.

견딤이 쓰임을 만든다고 했다. 북풍한설을 견디면 대지는 새 순 돋고 꽃이 피는 성찬을 즐길 것이다. 꽃피는 봄이 오기 전에 꽁꽁 얼어붙은 금강의 물길부터 해산을 할 것이다. 굳게 잠긴 내 마음의 빗장은 언제나 열리게 될까. 얼른 하산해서 아궁이에 재를 치고 군불을 지펴야겠다. 글 / 변광섭(컬처디자이너, 에세이스트)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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